아날로그의 매력은 오래됨이지만 그럼에도 신제품 소식이 나타나면 이 시장이 오래갈 거라는 설렘을 감출 수 없습니다. 저에겐 하만 신제품 소식이 바로 그랬어요. 피닉스. 아날로그가 새롭게 피어날 것 같은 이름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귀여운 주황빛 매거진에 신화 속 불사조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이 신제품은 이제 '붉사조'라는 닉네임으로 주목 받고 있지요. 사람들 별명 참 잘 짓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특히 붉은 할레이션은 정말 불사조의 열기가 떠올랐어요. 하지만 직접 찍어보니 붉기만 한 결과물만 주는 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빨갛다'보단 일상 속 숨은 적색을 더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해준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더라고요.
첫 피닉스는 수동 필름 카메라로 사용해봤는데요, 이번에는 두 명 모두 자동 필름 카메라를 써봤습니다. 니콘 35 ti와 라이카 z2x를 사용했어요. 사용감이 가득한, 각자가 애정하는 카메라들입니다.
*니콘 35 ti는 감도 125 / 라이카 z2x는 감도 설정 없이 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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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 (명사)
1.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새.
500~600년마다 한 번 스스로 향나무를 쌓아 불을 피워 타 죽고 그 재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한다.
유의어로 불사조와 불새가 있다.
2. 하만 포토의 신제품.
첫 컬러 필름으로 붉은 할레이션이 특징으로 꼽힌다.
별명으로 붉사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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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을 담아보다
개인적으로 '출사'라는 단어를 쓰는 날에는 조금 더 여기저기를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려면 바깥 위주로 다니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이번엔 간편한 카메라를 챙긴 만큼 각자의 일상을 찍어보기로 했어요. 도서관, 카페, 소품샵, 전시 등 다양한 하루를 담았습니다.
컬러나 특성이 강한 필름이다보니 조금 걱정을 했습니다. 필름 사진은 다양한 분위기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커피가 파란색으로 나오면 좀 곤란하잖아요. 다행히 파란 커피(?)나 빨간 레몬(!) 대신 빈티지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사진이 나왔습니다.
여유로운 일상에서 커피 한 잔은 필수죠.
한층 더 선명히 보이는 빨강이 일상 속 포인트가 되는 기분이에요.
| 세월이 묻은 붉은 색
옛날 건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 색인가요? 저는 붉은 갈색입니다. 오래된 주택, 역사를 기록한 건물, 더 멀리 왕조 시절의 목조 건물도 그렇죠. 그런 옛날의 것들을 피닉스로 담으니 한층 더 '필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정말 필름으로 찍었지만요.
세월이 깃든 밝은 벽돌 건물도 빛과 피닉스를 만나 붉게 물들었습니다. 새로 나왔어도 필름은 필름이라고, 오래된 것들과 합이 좋네요. 예스러운 붉은 빛이 현대의 시간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듯 합니다.
예스러운 붉은 벽돌이 피닉스를 만나 더 깊이있게 느껴집니다.
시간과 이야기가 담긴 붉은 색 덕분에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깁니다.
| 단 한 장의 사진
피닉스는 언코팅 필름이라 한층 아날로그한 느낌이 사는 특징이 있는데요, 바로 검은 점입니다. 옛날 필름 영화를 떠올리면 조금 더 쉬울 것 같아요. 필름 시절 촬영한 옛날 영화에는 자글자글한 화면에 문득 문득 불규칙하게 지나가는 검은 점이 떠오르시나요? 우리가 필름 효과를 내기 위해 넣는 먼지 필터와는 또 다른 빈티지한 매력을 보여주는 필름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사진 속에 피사체가 가득할 때는 찾을 수 없다 보니 발견하면 더욱 반갑더라고요. 앞으로도 피닉스 필름을 사용하게 되면 문득 피사체를 덜어내고 찍어볼 것 같아요. 예측하지 못한 위치에 생겨난 검은 점. 이 필름 사진이 단 한 장임을 선명하게 해주는 감성이 아닐까요.
| 눈으로는 담을 수 없는 빛, 할레이션
여전히 추운 날씨지만 그래도 겨울이 끝나가나봅니다. 해가 많이 길어졌네요. 낮이 길든 밤이 길든 넘어가는 노을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피닉스로 담은 노을 역시 그랬어요.
피닉스 200의 가장 큰 매력은 반사되는 빛이나 빛번짐이 아름답게 담긴다는 점인데요, 보통 이런 효과를 할레이션 이라고 합니다. 피닉스는 할레이션이 붉게 담기는 편이에요. 그래서 붉은 노을을 기대했지만 막상 사진을 받아보니 불타는 노을 대신 고요하고 잔잔한 시간이 담겼습니다. 시네마틱한 분위기와 더불어 건물과 나무를 따라 빛나는 할레이션이 피닉스의 매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네요. 붉은 할레이션 같은 효과들은 눈으로 볼 수 없다 보니 어쩐지 비현실적이라 더 영화 속 한 장면 같습니다.
'플래시를 터트릴 걸' 하고 후회했는데 망울진 할레이션을 보니 이대로도 마음에 들어요.
평범했던 통로가 걸음마다 붉은 빛이 일렁이는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바뀌었습니다.
| P.S. 필름은 감성이다.
빛나는 쉼표. 초점은 감성에 맞았습니다.
| 매일이 특별해지는 마법
이미 지나버린 크리스마스지만 피닉스의 매력적인 컬러감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시즌이었죠. 할레이션이 생기는 반짝이는 장식과 어딜 봐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레드의 향연이었습니다. 사진 전체에 붉은 기운이 깔리는 필름이라 레드가 부담스럽게 강조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컬러에 집중이 되면서도 빈티지하고 시네마틱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사진들이 나왔습니다.
혹시 피닉스 필름을 가지고 있다면 레드 몇 가지를 담아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피닉스로 찍는다면 늘 크리스마스일지도요.
눈과 빨강과 초록이라니 완벽하네요.
사용 제품|니콘 35TI, 라이카 Z2X, 그리고 하만 피닉스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