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를 친구 삼아 떠나는 동네 여행 ‘나의 반려렌즈’. 오늘은 SIGMA 50mm F1.2 DG DN | ART(이하 50mm F1.2)와 떠난 서울 삼청동 여행입니다.
조금 갑작스러운 얘기지만 F1.2 렌즈는 만들기 어렵습니다. 정확히는 6000만 화소에 이르는 요즘 풀프레임 카메라 센서의 해상도를 커버할 수 있는 제대로 된 F1.2 렌즈는 만들기 어렵다고 할 수 있죠. 미러리스 카메라 시대가 되면서 부쩍 이렇게 밝은 렌즈가 늘었는데요. 매우 가까운 플랜지 백(Flange Back) 덕분에 렌즈 설계의 자유도가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플랜지 백은 렌즈 마운트와 센서 사이의 거리를 말합니다. 더욱이 일부 카메라의 경우 렌즈 마운트의 크기도 대폭 커져서 렌즈 설계의 어려움이 줄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풀프레임 센서를 탑재한 미러리스 카메라를 상대적으로 늦게 시장에 투입한 몇몇 브랜드는 애초에 자체 시스템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렌즈 로드맵에 F1.2 렌즈를 배치함으로써 기존 제조사와 차별성을 나타냈습니다. 더 큰 마운트, 더 가까운 플랜지 백이 대구경 렌즈를 제작하는데 유리하다는 점을 아예 렌즈를 출시하면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일까요? DSLR 시절과 비교하면 이러한 대구경 렌즈는 제조사와 초점거리를 막론하고 참 다양한 영역에 분포 되어있습니다. 시그마는 F1.2가 아니더라도 F1.4에 이르는 대구경 렌즈를 초광각 렌즈에 적용하는 등 이러한 대구경 경쟁에서 절대로 뒤쳐지지 않는 제조사입니다. 언제나 자신들을 작은 회사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서드 파티임에도 메이저 제조사와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면 멋있게 느껴집니다.
F1.2 렌즈를 만들기가 어려운 이유는 렌즈가 크기 때문입니다. 밝은 렌즈는 곧 렌즈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더 많은 양이 들어오려면 더 넓은 통로가 필요한 셈이죠. 렌즈를 크게 만들면 수차를 제어하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F1.2는 F1.4와 비교하면 채 1스톱이 되지 않는 적은 차이지만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훨씬 복잡한 설계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시그마의 50mm F1.4 DG DN | ART 렌즈와 비교해서 50mm F1.2는 렌즈의 매수가 14장에서 17장으로 증가했고 비구면 렌즈도 3장에서 4장으로 한 장 더 추가됐습니다. 초망원렌즈도 아니고 겨우 50mm 표준렌즈에 12군 17매 구성에 비구면 4장이라니. 대단한 수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각각의 렌즈는 정말 얇게 가공했다고 합니다. 시그마의 표현으로는 ‘극한까지 얇게 가공’ 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최대 개방에서 수차는 극도로 제어하고 렌즈의 크기와 무게는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이 렌즈는 최신 6000만 화소 카메라를 대응하면서도 무게가 745g에 그쳤습니다.
미러리스 시대가 되면서 렌즈 설계의 자유도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결코 설계가 쉬워진 것은 아닙니다. 고사양이면서 소형화된 렌즈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해진 것뿐이지 오히려 과거와 비교해 기준은 높아졌죠. 가장 큰 이유는 영상 때문입니다. 이제 사용자는 렌즈를 사진 촬영에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고급 렌즈가 될수록 영상 제작자의 사용 비율도 높습니다. AF는 자연스럽고 포커스가 이동해도 화각이 변하면 안 되는 데다가 노출의 변화도 매끄러워야 합니다. 시그마는 이러한 조건에 모두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먼저 이 렌즈는 포커스 브리딩이 최소화되어서 초점이 변해도 화각의 변화가 매우 적제되어 있습니다.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 또한 무단계로 제어할 수 있는 수동 조리개링을 적용해서 촬영 중에 노출을 자연스럽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AF는 2개의 초점 렌즈군을 각각 별도의 리니어 모터로 구동해 빠르면서도 부드럽습니다.
이러한 렌즈의 신속한 제어와 높은 해상도가 최신 카메라의 피사체 트래킹 기능과 맞물리면 정말 옛날이었으면 상상도 못했을 F1.2 최대 개방에서 날아가는 새를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정신나간 촬영이 가능합니다. 이제 F1.2 렌즈는 절대로 포즈를 잡고 서있는 모델을 촬영하는 전용 렌즈가 아닙니다. 데일리로 충분히 활용이 가능하죠.
렌즈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길었네요. 사실 산책을 하는 동네는 지금 거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비네팅을 제외하면 최대 개방에서 수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렌즈에 정신이 팔려서 어떻게 하면 렌즈의 매력을 더 잘 보여주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해가 비치는 대낮에도 조리개를 한껏 열기 위해서 평소 잘 쓰지도 않는 ND 필터를 끼우고 나섰습니다.
해상도가 높은 렌즈는 심도가 낮을수록 빛을 발합니다. 아주 얕은 초점면이 선명하게 표현됐을 때 그 효과는 극도로 증가하죠. 마치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묘사를 보여주는데 이 렌즈의 최대 개방은 그런 맛이 느껴졌습니다. 안개처럼 흩어지는 보케는 개방 수치가 높은 렌즈인 만큼 조금 먼 거리에서도 충분하게 나타나서 망원렌즈가 아닌데도 인물의 전신을 촬영했을 때 배경이 크게 흐려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50mm F1.2와 함께한 촬영은 무척 즐거웠습니다. 다만 밝은 날 촬영을 계속 하기에는 8월이 너무 더웠습니다. 조금이라도 더위가 꺾이기를 기대해 봅니다. 해는 짧아지겠지만 그보다 선선한 날씨가 더 간절한 계절이네요.
사용 제품 ㅣ 파나소닉 S5II + 시그마 50mm F1.2 DG DN |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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