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는 곳으로 간다는 건 설레는 일입니다.
동시에 두렵기도 하죠.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게 낯설기도 하고요.
이렇게 되게 많은 느낌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게 여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탕헤르에서 보낸 이틀(1)'을 보여드리고 나서 한동안 여행병에 걸려서 여기저기 찾아 봤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뒤흔드는 모로코 여행기. 탕헤르에서 보낸 이틀. 시작합니다.
"스페인식 지명인 'Tanger'를 한글로 적으면 '탕헤르'에 가까운데, 무슨 이유인지 한글로 적힌 탕헤르는 내게는 퍽 이국적인 생김이다.
나는 유난히 이국의 냄새를 가진 낯선 글자의 소리와 모양에 집착하는 면이 있나 보다."
"인기가 많던 탕헤르는 이름마저도 많아서, 영어로는 탠지어 (Tangier), 프랑스로어로는 탕제 (Tanger),
포르투갈어로는 탕제호(Tânger), 아랍어로는 탄자 (طنجة)라고 불린다."
Morocco, 2020. ⓒ Julie Mayfeng
"탕헤르는 1923년부터 1956년 모로코가 독립하기 전까지, 프랑스와 스페인, 영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공동 관리하던 국제도시였다.
이때 많은 이들이 자유를 찾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탕헤르로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는 작가들이나 예술가들도 많았다."
Morocco, 2020. ⓒ Julie Mayfeng
"바로 그 시절에 이곳 '그랜드 호텔 빌라 드 프랑스'가 문을 열고 손님을 맞았다.
원래는 1880년에 프랑스 외교관의 주거지로 지어져 왕족과 외교관, 유명 인사들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호텔로 문을 열기 전에도 이미 이곳에서 지낸 예술가가 있었으니, 바로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17896-1954, 프랑스 화가)'다."
Morocco, 2020. ⓒ Julie Mayfeng
"정말 오고 싶었던 곳이었어요. 마티스 때문에."
"그러니까 이 호텔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그 누구도 아닌 마티스 때문이었다.
2019년 1월, 모스크바를 여행하던 중에 마티스의 어떤 그림 하나를 보기 위해 푸쉬킨 미술관을 찾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마티스의 또 다른 그림들이 마티스가 이곳 모로코 탕헤르에 머물며 그린 그림들이었다. "
"사실 그 전부터도 탕헤르는 이미 익숙한 지명이긴 했는데, 10년도 훨씬 전, 한 프랑스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을 통해 본 적이 있었다.
아무튼 그 사진에 끌렸었다. 그런데 또 탕헤르라니, 탕헤르는 분명히 뭔가가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Morocco, 2020. ⓒ Julie Mayfeng
Morocco, 2020. ⓒ Julie Mayfeng
"이 호텔에 머문다면, 반드시 전망 좋은 방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티스가 보았던 그 풍경을 오래 보고 싶었다.
잠깐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내내 언제라도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Morocco, 2020. ⓒ Julie Mayfeng
Morocco, 2020. ⓒ Julie Mayfeng
"이제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 핸드폰으로 검색을 한다.
탕헤르에 오기 전부터도, 탕헤르에 가서는 신선한 생선 구이를 꼭 먹어야지 했었다. 얼른 그곳으로 향한다.
아, 남는 테이블이 없다. 10분만 더 기다리다가 마음을 접고 왔던 길을 따라 올라가니,
그랑 카페 드 파리 (Gran Cafe de Paris) 대각선 방향으로 형광등 불빛이 환하게 켜진 피자가게가 보인다."
"웬만하면 뭐든 잘 먹는 내게도 이 피자의 맛은 조금 어렵다.
겨우 두 조각을 콜라맛으로 삼키고, 남은 음식은 그래도 아까워서 포장을 한다.
내일은 꼭 생선구이를 먹어야지 하면서 걸어 나오는데, 조금 전부터 내린 비에 거리는 축축이 젖어 있다."
Morocco, 2020. ⓒ Julie Mayfeng
"108년 전 마티스가 경험한 그 첫날처럼 비가 내린다.
나는 그저 여행을 시작하고 내리는 첫 비를 여행의 마지막 도시에서 맞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반가울 따름이다.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그런 날이기 때문에."
- <탕헤르에서 보낸 이틀 (2)> 中에서
Morocco, 2020. ⓒ Julie Mayfeng
관련정보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1869-1954)
프랑스의 화가. 야수주의의 창시자로 강렬한 색채와 형태의 작품을 선보였다.
법률을 공부하다가 열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했으나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 잡았다.
회화 외에도 조각, '종이 오리기' 작업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특히 '종이 오리기'는 1941년 십이지장암으로 큰 수술을 받은 이후 체력적으로 회화 작업이 어려워지자 선택한 기법으로 마티스 본인은 '가위로 그렸다'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