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만질 때'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바로 그 짤. 만질 수 있으면 만저보라냥.
'고양이'를 떠올리면 어떤 것들이 먼저 떠오르나요? 저는 우선, 귀엽습니다. 정말 귀여워요. 그리고 말랑하고 따끈한 털뭉치가 떠오릅니다. 아기처럼 보채는 울음소리도,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내는 지 전혀 알 수 없는 골골송도요. 그리고 제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 있어요.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가장 작은 몸으로 가장 큰 사랑을 전할 때, 저는 이 요망한 동물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는 법을 잊어버립니다. 티가 나겠지만 저는 고양이를 유난스럽게 좋아하고 또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어두운 곳에서도 무섭게 빛나는 눈, 찢어지는 높은 비명, 맹수같은 이빨과 날카로운 발톱, 간식을 줘도 살갑지 않은 까탈쟁이 털동물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말랑한 발바닥을 만난다면, 애교 섞인 헤드번팅, 좋아한다며 열심히 자기 냄새를 묻히는 부비적거림을 당한다면, 누구라도 사르르 녹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바로 고양이들이 지구를 정복하는 방식이지요. 온 집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은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요물, 우리를 홀린 고양이(CAT-ch me if you can)≫ 전시를 다녀왔습니다.
전시 포스터부터 앙큼하고 요망합니다. 정말 귀엽다는 뜻이에요.
전시 ≪요물, 우리를 홀린 고양이(CAT-ch me if you can)≫는 입구부터 색다릅니다. 박스 속에 숨어있는 고양이가 처음엔 눈을 꿈뻑, 그 다음은 코를 벌렁, 그러고는 토실한 앞발을 꺼내 입장객을 홀립니다. '들어오라옹-' 하고 인사를 하는 걸까요? 입구에 선 사람들은 벌써 사진을 찍고 함박 웃음을 지으며 전시를 들어갑니다. 이 털동물의 매력에 입구부터 정신을 못차리겠어요.
이 전시는 예로부터 고양이에게 홀려온 인간들을 깨우치기 위해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인간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오래도록 인간들을 홀려온 이 무지막지한 고양이의 비밀을 하나하나 파헤쳐 보시죠.
1부. 귀엽고 요망한 고양이
실제 촉감을 살린 오감 전시
1부는 고양이가 전 세계, 전 지역, 전 세대를 홀려왔음을 알려주는 공간이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고양이를 부르는 이름과 따라하는 울음소리, 외형적 특징에 대한 설명은 물론 보드라운 털까지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준비되어있었습니다. 의외로 꽤나 비슷했어요.
귀여운 털뭉치는 하나인데 이름은 수십 개
곤충 나비가 아니라 잔나비였군요.
'내 동생'이라는 동요에는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라는 가사가 있죠. 고양이도 귀여움은 하나인데 불리는 이름은 수십 개였다고 합니다. 괭이, 나비 등 우리가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말고도 오원(烏圓, 검은 고양이가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모습을 보고 붙인 이름)이나 살쾡이를 뜻하는 리(貍)를 붙인 리노(貍奴)와 소리(小狸) 등의 이름도 있었습니다. 특히 저는 '살찐이'가 참 귀여웠는데요, 뜻은 '집에서 기르는 삵'이라 그렇게 귀엽지는 않았지만요.
전시는 그저 걷기만 하면 놓치는 이야기가 많도록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직접 손을 뻗어 뜻을 꺼내보고 허리를 숙여 털을 쓰다듬어야 비로소 더 고양이와 그리고 이 전시와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다른 공간에서도 화면을 터치해 문제를 맞히기도 하고, 고양이의 전설에 대한 생생한 목격담을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저 보고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에 참여한다는 느낌이 드는 구성이라 한층 흥미로웠습니다.
영조 시절의 '묘마마' 이야기와 숙종이 고양이 '금덕이(금손이의 엄마)'를 묻으며 남긴 글
숙종이 사랑한 고양이 '금손이(금묘)'의 이야기. 숙종이 죽자 오래 울다 굶어 죽었다고 기록되어있다.
문헌 뿐 아니라 옛 그림에도 고양이가 잔뜩.
이 매력적인 고양이들은 우리의 선조부터 홀렸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얼마나 사람을 매혹했으면 그 귀한 용상의 수라 시간에 함께 고기를 나누어 먹었을까요. 숙종의 동물 사랑은 워낙 유명한데 그런 숙종이 이름을 지어주고 모자를 거두어 먹이고 재운 동물이 바로 고양이었습니다. 숙종이 엄마 금덕이를 묻으며 남긴 애틋한 글과 숙종이 떠나고 남겨진 금손이의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참 예쁘면서도 마음이 저려옵니다.
참, 우리나라에도 '캣맘'보다 더 오래된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영조 시절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옷을 입히며(고양이에게 옷을 입히다니 보통내기가 아니셨던 게 분명합니다.) 예뻐하던 사람을 '묘마마'라고 불렀다고 해요. 고양이들의 마마님이라니. 소리내 발음해보니 사랑스럽고 귀한 느낌이 듭니다. 새삼 영조 시절에 기록되었다는 것도 눈이 갔습니다. 최근까지도 고양이를 달여 먹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과거에는 더 했겠지요. 그런 시절에 영조가 자신은 고양이를 쓴 약을 먹지 않겠다고 거절한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즐겨 먹던 다른 짐승 고기들도 점차 줄이며 동물의 멸종을 걱정했다고 하죠. 군주가 그런 고민을 하는 시절이기에 더 '묘마마'가 좋은 시선으로 기록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양이가 시신을 뛰어넘으면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고 합니다. 금손아, 숙종을 뛰어넘었어야지.
생생한 목격담을 직접 들을 수 있도록 마련된 전시관
대한민국 최초의 공포 영화 <살인마>
분명 공포영화라고 했는데 고양이와 같이 사는 인간 눈에는 그저 귀엽습니다.
고양이는 참지 않지! 한 챕터는 복수하는 고양이 일화로 꾸려졌어요. 사실 고양이는 불길한 동물로도 유명합니다. 빛나는 눈 때문일까요? 하지만 읽어보니 다 인간이 먼저 잘못했더라고요. 죽이고 괴롭혔으니 말 못하는 털동물이 복수를 할 수도 있지요- 라는 말은 물론 진담이 섞인 농담입니다만, 한국 최초의 공포 영화가 괴롭힘 당한 집사를 위해 복수하는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라니 이런 복수는 조금 감동입니다.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의 경우도 그 울음소리가 결국 우리 집사를 구해달라는 서글픈 울음이었잖아요. 역시 복수보다는 보은이 더 어울리는 동물입니다.
어떻게 보면 고양이는 짐승이라기엔 너무 작고 집에서 키우는 동물이라기엔 쉽게 곁을 주지 않는 특성을 지녔기에 쉽게 괴롭힘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고양이를 보호하기 위해 조금은 두려운 일화들로 고양이에게 안전함을 선물했던 건 아닐까요?
2부. 안방을 차지한 고양이
고양이 신조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하루종일 이렇게만 살고 싶습니다.
'가낳지모'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내 캣페어의 메인 카피 중 하나입니다. 바로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기른ㄷ 아니 모신다' 는 말입니다.(가낳지모 TMI. 처음엔 '기른다'는 동사를 썼다가 전국의 집사들에게 큰 반발을 사 '모신다'로 변경되었습니다.) SNS에서 우스갯소리로 시작한 이 문장은 이제 집사들의 구호가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그저 집에 들어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귀이 모셔야 하는 분이다, 이 말입니다.
고양이의 역사 연표
지나가던 관람객의 깨달음. "아, 맞다! 춘식이도 고양이었지!" 우리네 삶에 고양이가 이렇게 많답니다.
안방을 차지한 고양이는 따끈한 실제 고양이 말고도 많았습니다. 가장 가깝게는 우리가 매일 메신저를 이용하며 만나는 춘식이부터 현재 5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헬로 키티, 여전히 사랑받는 톰과 제리의 톰도 아주 앙큼하고 다정한 고양이지요. 뮤지컬 <캣츠>의 「Memory」 CD와 「검은고양이 네로」 LP가 전시된 곳에서는 작게 해당 음원이 들려왔습니다. 귀를 기울이며 고양이 연표를 살피니 우리네 침실에는 고양이 인형이, TV 시리즈와 영화관에는 고양이 애니메이션이, 극장에는 캣츠가 ... 세상에, 안방이 아니라 어디를 둘러봐도 고양이네요.
'고양이 탐정' 윤현철 님과 『매거진 탁』의 편집장 김포도님 인터뷰
<소금툰>의 김수윤 작가의 '집사 인터뷰'와 인스타툰 이미지
집 가운데에 저렇게 앉아서는 만지지 말라니. 정말 고양이답군요.
저는 아무래도 간택당한 것 같습니다.
2부와 3부는 집을 구현한 전시 공간을 기준으로 안 쪽은 집에서 보내는 집냥이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그 바깥에는 길냥이들의 이야기와 그들과 공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어요. 집 앞과 안에서는 집사의 일과표 일러스트를 그린 <소금툰>의 작가 김수윤 님의 인터뷰와 '고양이 탐정' 윤현철 님, 그리고 고양이 잡지 『매거진 탁』의 편집장 김포도님의 인터뷰도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공존을 넘어 소통과 전파까지 담당하는 직업으로 고양이를 더욱 깊이 인간 세상에 끌어들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가장 큰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양이에 대한 깊은 애정이요. 그리고 이 전시를 기획한 사람들도 방문한 사람들도 모두 그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겠지요. 우리는 아무래도 그들에게 이미 '간택'당한 것 같아요.
집 안을 잘 구경하고 나가면 고양이의 비언어적 표현들로 만들어진 시험을 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만점 집사(!)가 되었는데요, 이론을 넘어서 행동으로도 만점을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해보겠습니다.
3부. 우리 동네 고양이
≪요물, 우리를 홀린 고양이(CAT-ch me if you can)≫ 전시 도록
≪요물, 우리를 홀린 고양이(CAT-ch me if you can)≫ 전시 도록 일부
마지막 3부는 고양이와의 공존을 넘어 공생하는 삶에 대한 고민들이 담겨있었습니다. 집 모양으로 구현된 공간을 나서면 넓게 트인 공간에서 고양이에 대한 책을 읽으며 쉴 수 있어요. 그림책과 만화책, 소설과 전시 도록까지. 다양한 책들이 준비되어 있으니 여유있게 즐기다 가면 좋을 듯 합니다. 이 공간 주변에 작은 고양이들이 여기저기 빼꼼 하고 얼굴을 내밉니다. 그런 고양이들을 따라가다보면 커다란 사진 앞에 멈춰 서게 됩니다. '모두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참 속상하게 다가왔습니다.
'별 일 없이 오래오래'
폐아파트에 남은 길고양이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전시 초입에 고양이들의 실제 나이와 인간으로 환산했을 때의 나이가 있었어요. 7살이라는 고양이 나이를 살피니 집고양이와 길고양이의 환산 나이가 달랐습니다. 집고양이는 44세, 길고양이는 64세. 어쩔 수 없는 셈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쩐지 그 앞에 오래 있었습니다.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2년에서 3년입니다. 생각보다 정말 짧지 않나요? ‘길’이라는 한 글자만 떼면 수명이 평균 12년에서 18년으로 늘어납니다. 길에서 산다는 건 이미 그 자체로 위험천만합니다. 질병과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된 삶이니까요. 그런 고양이들을 위해 밥을 주거나 돌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캣맘', '캣대디' 라고 하죠. 하지만 과도한 길고양이 보호로 주변 거주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의견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여러 문제가 일어나면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많은 캣맘, 캣대디들이 『길고양이 돌봄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돌봄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전시에서는 그 기준이 되는 『길고양이 돌봄 가이드라인』도 비치되어 있었어요.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야기
탄이의 물건 1
마지막으로 들어간 곳은 떠나는 반려동물을 기록해둔 곳이었습니다. 원래 전시 상에서는 2부와 3부를 잇는 다리 역할이더라고요. 흔히 반려동물이 떠나는 것을 '무지개다리를 건넌다'고 합니다. 이 표현이 시작된 시 한 편이 벽면에 적혀있었어요. 작자 미상의 「무지개다리」 라는 시에는 죽음을 맞은 동물들이 아프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먼 훗날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었습니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그 누가 썼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런 따뜻함을 남기는 작은 삶들이 언제 어디서든 그저 행복하기를.
고양이라는 종(種) 하나로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까지 폭 넓은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미 인간들은 고양이에게 완벽하게 정복 당한 것이 아닐까요? 이 사랑스럽고 요망한 동물은 인간을 진정한 공존으로 이끌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차 아래, 화단 뒤에 숨어있을 작은 삶들을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주세요. 우리는 앞으로도 오래, 함께 살아갈테니까요.
덧, 소소하게 귀여운 포인트들을 함께 남겨둡니다. 전시를 간다면 숨어있는 고양이들을 찾아봐 주세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알아차려주길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전시 공간의 도면에 숨어있는 고양이
신나서 꼬리를 바짝 세우고는 어디 가고 있는 걸까요?
이 발바닥이 향한 곳은?
전시 내내 고양이와 함께였습니다.
· 전시 기간 : 2024-05-03 - 2024-08-18
· 운영 시간 : 월 - 일 09:00 - 18:00 (공휴일 제외)
관람 종료 한시간 전 입장 마감
· 전시 장소 :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1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
· 관람 요금 : 무료
사용 제품 | RICOH G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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