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좋아하시나요? 저는 꽤 좋아합니다. 예전에는 하루에 한 롤을 뚝딱 끝내기도 했지만 요즘은 한 롤을 오래 가지고 다니는 것을 좋아해요. 고작 36장의 사진에 계절이 담기고 시간이 묻어 각자의 내음을 풍기는 기록을 좋아합니다. 필름을 찍게 되면 셀프 현상을 하지 않는 한 현상소를 꼭 찾게 되죠. 요즘은 그 현상소들이 점점 더 다양한 체험과 감성을 제공하더라고요. 필름 사진의 고향 같은 을지로 일대의 매력적인 현상소들을 촬영을 핑계로 한 번 더 들렀습니다.
| 고래사진관 현상소
복작복작한 고래사진관 내부
고래사진관은 충무로의 복작복작한 삼거리에서 고개를 들어 수많은 간판을 헤치고 발견해 내는 맛이 있는 현상소입니다. '여기가 맞아..?'라는 의문을 품고 계단을 오르면 생각지 못한 공간이 펼쳐지죠. 특히 넓은 공간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입구부터 쭉 이어진 필름과 카메라, 그리고 다양한 굿즈를 구경하면 널찍한 대기 공간과 셀프 스캔과 컷팅 공간이 눈에 들어오죠.
각 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확인할 수 있어요
고래사진관의 시그니처 아이템 미스터리 필름
필름으로 디자인 한 키링과 스티커, 마스킹 테이프와 엽서까지
슬라이드 필름으로 만든 키링. 옛날엔 영사기에 들어갔었죠
특히 미스터리 필름이라는 불투명 포장지 속 필름이 고래사진관의 인기 요인 중 하나입니다. 가챠나 랜덤박스처럼 생각지도 못한 필름이 나오는 경험을 하고 나면 괜히 그 은색 포장지에 한 번 더 손이 가게 돼요. 특히 필름의 의외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꾸만 찾게 되는 마성의 제품입니다.
고래사진관은 다양한 필름 굿즈를 판매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마그넷과 키링은 물론 스티커와 그립톡도 있습니다. 원하는 디자인으로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제작할 수도 있죠. 필름 취향에 따라 굿즈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는 폭이 넓어요. 필름과 굿즈로도 볼거리가 풍성하지만 역시 고래사진관은 뭐니 뭐니 해도 셀프 스캔이 최고의 굿즈이자 재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셀프 컷팅 존과 셀프 스캔 존
사진 별로 노출과 색감을 조절할 수 있어요
노리츠 스캐너와 코닥 스캐너. 후지 스캐너도 있습니다
고래사진관은 즐기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찍어온 필름을 맡기고, 셀프 스캔 여부를 고릅니다. 직접 사진을 스캔한다면 어떤 스캐너로 하고 싶은지 고르고 필름 현상이 완료될 때까지 내부를 즐기면 됩니다.
사실 셀프 스캔이라 하면 어쩐지 전문가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예스러운 기계들은 어쩐지 디지털인지 아날로그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하지만 사진에 나의 취향과 색감을 담고 싶은 필름 유저들에게는 너무 반가운 공간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셀프 스캔은 분명 이색 체험이죠.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처음 써봤다고 해도 셀프 스캔을 한다면 한층 필름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재밌잖아요. 사람들이 고래사진관을 찾는 가장 이유죠.
필름을 담고 도장까지 쾅. 완벽한 나만의 굿즈 완성
이런 재미를 찾아 고래사진관을 오래 찾는 사람들은 유쾌한 사장님과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고래사진관은 사장님으로도 유명합니다. 유튜브를 통해 직접 현상과 스캔 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다양한 필름 피플을 찾아 만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슬로우렌즈라는 필름 사이트를 운영하며 필름으로 세상을 기록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고래사진관이 스스로를 '저렴해서 찾는 현상소'라고 부르지만 이렇게 방문해 보니 한층 사랑받는 이유를 알겠네요.
고래사진관 현상소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고래사진관 현상소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 이미지를 누르면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 주소 : 서울 중구 마른내로2길 31 3층
· 영업시간 : 월-수, 금 12:00 - 20:00 토-일 12:00 18:00 (목요일 휴무)
· 기본 현상 금액 : 컬러 + 셀프 스캔 6,000원. 흑백 / 영화용 / 해상도에 따라 금액 변동
· 필름 카메라 대여도 가능
| 망우삼림 현상소 & 20세기 인쇄사무실
필름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고래사진관에 이어 망우삼림 역시 익숙한 이름일 겁니다. 忘憂森林(망우삼림 ; 나쁜 기억을 잊게 해주는 망각의 숲)은 특유의 이국적인 감성으로 사랑받는 현상소입니다. 망우삼림을 방문해 본 분들이라면 마지막 한 장을 남기고 찾아와 망우삼림의 공간을 찍으며 한 롤을 끝내고 현상을 맡겨본 적이 있겠지요. 망우삼림도 기존에는 필름 판매와 현상, 스캔만 진행했는데 4층에 20세기 인쇄사무실을 열면서 한층 볼거리가 다양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묵직한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국적이고 감성적인 공간이 등장합니다. 망우삼림은 사무실과 대기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오른쪽으로 주인을 기다리는 수많은 필름더미가 감각적으로 다가옵니다. 마구잡이로 꽂혀있는 듯 하지만 어쩐지 망우삼림에서는 무질서도 다 이유있는 배치같이 느껴져요.
필름을 맡기려고 서 있으면 분주하게 필름을 스캔하는 직원들을 볼 수 있어요. 막아서는 것 하나 없는 공간인데도 분주한 직원들을 보면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화려한 색감 속에서 적막함이 느껴지는 망우삼림의 매력과 닿아있네요. 현상을 맡기고 뒤를 돌면 여러 종류의 필름과 필름 카메라에 필요한 배터리 등이 있습니다. 망우삼림은 유명한 현상소 중 비교적 현상 외에는 구매할 거리가 적은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만나볼 20세기 인쇄사무실을 보면 '다 계획이 있었구나'하는 마음이 들지요.
빈티지한 소품들과 슬라이드 필름으로 꾸며진 대기 공간
보통은 평일에도 주말에도 사람이 많습니다. 이날은 어쩐 일로 타이밍이 잘 맞아서 여유롭게 공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망우삼림은 현상소가 아니라 컨셉 스튜디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홍콩의 이국적인 감성이 물씬 풍깁니다. 괜히 필름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것이 아니죠. 하지만 역시 판매하는 굿즈가 없어 아쉽다면 함께 4층, 20세기 인쇄사무실로 올라가 봅시다.
20세기 인쇄사무실도 망우삼림이 그러하듯 컨셉에 진심인 공간입니다. 세기말 감성을, 아니 물질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엉덩이가 볼록 튀어나온 모니터와 열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멈출 것 같은 서랍, 픽셀이 보일 것 같은 두툼한 TV와 테이프를 넣는 오디오까지. 과거의 유물을 이렇게 정갈하게 사무실처럼 모아놓다니. 8-90년대 직장인이 본다면 추억이 새록새록 올라올지도 모르겠습니다.
20세기 인쇄사무실은 이름대로 '인쇄'가 가능합니다. 어디에나요. 작은 사이즈의 인화는 물론 포스터 사이즈도 가능하고, 종이 뿐 아니라 티셔츠에도 인쇄가 가능합니다. 종이 인쇄를 하는 경우 액자 제작도 문의할 수 있어요.
망우삼림에 컨셉츄얼한 대기 공간이 있던 것처럼 20세기 인쇄사무실도 사실 여유롭게 공간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무실의 의자에 앉아 쉬었다 가도 되죠. 망우삼림 내부에 이어 필름을 남겨서 현상소를 방문해야 하는 이유가 더 생겼습니다.
망우삼림의 시그니처 이미지가 박힌 캔 콜드브루와 밀크티는 비록 다시 3층에 내려가야 구매가 가능하지만 이마저도 아날로그의 감성이니 이보다 더 완벽하게 컨셉에 진심인 현상소가 또 있을까요?
· 주소 : 서울 중구 을지로 108 3층, 4층
· 영업시간 : 목 - 화 13:00 - 19:00 (수요일 휴무)
· 기본 현상+스캔 금액 : 컬러 5,000원. 흑백 / 영화용 / 스캐너 / 해상도에 따라 금액 변동
사용 제품|리코GR3, GR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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