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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라
LIFEArt & Culture
사영북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오스틴 클레온
202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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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영북] 사진가에게 영감을 줄지도 모를 북 리뷰

 

 

(1탄) 사영북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이 키건 (보러 가기)

(2탄) 사영북 『도파미네이션』 애나 렘키 (보러 가기)

 

 

 

 


시작하는 사진가를 위한 필독서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오스틴 클레온

 

내가 공부해야 할 단 하나의 예술은, 뭔가 훔쳐 올 만한 게 있는 예술이다.
(The only art I’ll ever study is stuff that I can steal from.)

 

- 데이비드 보위(『플레이보이』 1976년 9월 호에서)

 

 

 

 

읽고 나서 혼자 간직하는 책이 있습니다. 행여 다른 사람이 알게 될까 봐 혼자 몰래 꼭꼭 씹어 먹는 책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이 책은 저만 알고 싶어 블로그에 독후감도 안 썼던 책. 어떤 책이냐고요? 책 제목 밑을 보니 ‘죽어 있던 생각을 아이디어로 바꾸는 가장 현실적인 10가지 방법’이라고 적혀 있네요.

 

이는 사실 거짓말입니다. 이 책은 죽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텅 빈 사람을 위한 책이거든요. 그러니까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누가 나한테 이런 거 저런 거 해보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나만의 아이템을 찾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책인 거죠. 이제 막 사진을 찍기 시작하거나 글을 쓰기 시작하거나 영상을 만들기 시작한 사람을 위한 책.

 

 

 

 

꼭꼭 숨겨두고 싶은 이유요? 솔직히 말하면, 이 책에서 권하는 내용은 다른 사람들이 조언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나요.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만들라는 말은 진짜 많이 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책처럼 딱, 마음에 와닿게 지적한(?) 책이 드뭅니다. 그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나란 존재는 내가 직접 선택해서 인생으로 끌고 들어온 것들의 합체인 것이다. 나에게 영향을 미친 모든 것들의 총합이 바로 나 자신이다. 독일의 작가 괴테는 말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를 만들고 다듬는다.”

 

-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오스틴 클레온, p19

 

 

 

 


당신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쳐야 하는 이유

 

대체 어떻게 말했기에 제 마음에 와닿았을까요? 제목 그대로입니다. 이제까지 다른 사람들은 좋은 작품을 많이 보고, 읽으라고 말했습니다. 오스틴 클레온은 그렇게 하면서 그 사람들 스타일이나 아이디어를 ‘훔쳐라’라고 말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모든 아티스트는 서로를 훔쳐보며 자라니까요. 당당하게.

 

 

 

 

이를 좋게 말하면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처럼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근사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쁘게 말한다면 표절, 도용, 카피나 다름없습니다. 실제로 쟤가 내 아이디어 훔쳤다, 쟤는 누가 한 것을 베낀 거다-라고 말하며 싸우는 사람들 많이 보셨죠?

 

당연히 작가가 말하는 도둑질은 그런 도둑질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테마로 삼고 싶은 걸 찾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수많은 작품을 보고 그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걸 깨닫고 선택하고 수집하는 과정. 그것과 비슷한 작품을 만들면서 혼자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근육을 키우는 과정이 바로 훔치기입니다.

 


당장 사랑하는 것을 카피하라. 카피하고 카피하고 카피하고 카피하라. 그 수많은 카피들의 끝에 자기 자신을 찾을 것이다.(Start copying what you love. Copy copy copy copy. At the end of the copy you will find yourself.)

 

- 요지 야마모토

 

 

 

 


카피를 시작하라, 제대로

 

훔치기의 장점은 또 있습니다. 비슷한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쨌든 내 작품을 직접 만들게 된다는 거죠. 처음부터 따라쟁이가 아니었던 아티스트는 드뭅니다. 예술가는 모두 마음에 드는 작품을 따라 하면서 자랍니다. 아예 사진 잡지에서는 이런 작품은 이런 구도로, 이런 렌즈를 가지고, 이렇게 설정한 다음에 찍으면 잘 나온다고 알려주기도 하죠.

 

창의성의 본질은 기존 아이디어의 재해석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좋아하는 작가를 팔로우 하나요? 그 작가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나요? 그럼 알 겁니다. 인스타그램에서 그 작가와 비슷한 작가와 작품을 내 피드에 집어넣어 주니까요. 그리고 깨닫죠. 아, 세상은 넓고 비슷한 사진을 찍는 작가는 정말 많구나 하고요.

 

 

 

 

작가는 그것을 그저 솔직하게 말한 것뿐입니다. 좋아하는 작품을 찾고, 그런 작품을 아무리 작은 거라도 모으고, 좋아하는 스타일을 카피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이 책을 남에게 알려주기 싫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마음을 가볍게 먹고 이런저런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아질까, 경쟁자가 늘지 싶어 그랬던 겁니다. 옛날의 저는 참 약삭빠른 사람이었군요.

 


코넌 오브라이언의 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내가 늘 꿈꿔온 롤 모델처럼 되는 것, 그것에 실패함으로써 우리는 존재감과 독창성을 갖게 된다(It is our failure to become our perceived ideal that ultimately defines us and makes us unique).”

 

-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오스틴 클레온, p49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라

 

사진가 크리스 버카드는 이런 아이디어 훔치기의 좋은 예입니다. 오지에서 찍은 서핑 사진으로 잘 알려진 서핑 사진가죠. 그의 첫 사진집은 『캘리포니아 서핑 프로젝트 북』 은 멋지지만 흔한 서핑 사진집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사진이 싫증 나 서핑하기에는 너무 멀고 춥고 위험한 장소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런 변화가 그를 오지 서핑 사진가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그게 왜 이 책의 주장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냐고 물을 수 있지만 크리스 버카드가 서핑 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를 들으면 생각이 좀 달라질 겁니다. 그는 파란 하늘, 따뜻한 열대 해변, 구릿빛 피부가 좋아서 서핑 사진가가 된 사람이거든요. 그러다 이 일이 점점 지루해지자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움직인 겁니다.

 

시작은 좋아하는 것을 훔치기였지만 점점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작가들은 늘 이래요. 좋아서 시작했지만 만들다 보면 다른 것이 튀어나옵니다. 그렇게 자꾸 반복하다 보면 알게 되죠. 내가 정말로 잘하는 건,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지금 만들고 있는 이거였구나 하고요.

 

 

 


작품을 만든다거나 커리어를 구축한다는 것은 작은 노력들을 오랜 시간 천천히 쌓아 올려야 하는 일이다. 날마다 한 페이지씩 쓰는 글은 결코 많지 않지만, 그것이 365일 계속되면 한 권의 소설책이 된다.

 

-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오스틴 클레온, p135

 

 


당신이 되고 싶은 사람처럼 행동하라

 

저도 지금은 기술 관련 글을 쓰지만 한때는 소설로 등단한 작가였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어린 시절 컴퓨터 좋아하고 PC 통신에서 대화하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그랬던 것이 지금 먹고사는 일을 하게 만들어 줄 거라는 것을요. 한때 지루하고 의미 없게 느껴졌던 시간이 지금을 버티게 하는 토양이었단 것을요.

 

이 책에 훔치기 말고도 당장 당신을 움직이게 할 현실적인 조언이 가득합니다. 그게 이 책이 가진 큰 매력이기도 하죠. 구체적으로 훔치는 방법이라든가, 당신이 되고 싶은 사람처럼 행동하라든가, 디지털 말고 아날로그에 의지하라든가, 사람들과 공유하는 방법이라든가, 남을 존중하고, 빚지지 말고 등등.

 

 

 

 

늦었지만 이제 막 작업을 시작하는 아티스트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혹은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거나 영상을 만들거나 곡을 짓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꼭 작품 활동이 아니어도 기획서를 쓰거나 브랜딩 작업을 하거나 하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책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가다 보면 나중에는 남이 훔치고 싶은 작품을 만들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부디, 건투를.

 

 


 

글·사진|자그니 (책과 커피를 사랑하는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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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사영북 #북리뷰 #자기계발 #훔쳐라아티스트처럼 #오스틴클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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