져니로띠에서 달달한 태국 여행을 했으니 다른 나라 여행을 준비해봅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가까운 일본으로의 시간 여행은 어떨까요. 약간의 산책을 하며 동남아시아에서 동아시아로 날아가 보았습니다. 이번 가게는 기대보다 훨씬 긴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여기 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듯 않는 듯 적당한 거리를 두고는 반짝이는 곳이었습니다. 소박한 삶을 지향하지만 사랑하는 것을 한아름 안고 취향을 공유하는 누군가의 행복창고를 소개합니다. 주인장의 말을 빌리자면 '아무쪼록 즐겨주세요'.
(왼) 져니로띠 | (오) 도탑다
| 을지로 속 일본에서 만난 시간여행자들
다음 기획을 위해 북카페를 주제로 을지로에서 소개할만한 곳은 없는지 찾던 중에 ‘도탑다’ 라는 카페를 보게 되었습니다. 북카페를 검색했을 때 나오지만 북카페라기엔 익숙한 책이 없고, 카페라기엔 자리가 없어도 카페를 둘러보고 물건을 살 수 있는, 희한한 공간이었습니다. 일본의 콘텐츠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이 없다 보니 '이걸 가봐, 말아' 고민하던 중에 방문을 마음 먹게 한 것은 다름아닌 메뉴판이었습니다.
지도 사이트의 메뉴판에 하나하나 넣은 이미지가 저런 꼬질꼬질한(애정어린 표현입니다) 손그림이라니. 바닐라 카페오레에 ‘바닐라’라고 써놓은 동그란 글씨체도 제 마음을 저격했습니다. ‘이 집, 재밌겠다!’싶어 방문을 마음먹었죠.
그렇게 을지로 사거리에서 회사를 향해 걸어가는 길에 회사로 향하는 대신 은근하게 존재감을 풍기는 유리문을 밀었습니다. 우산을 털며 들어간 그 곳은 공간을 채운 시간여행자들로 가득했습니다.
불친절한 듯 수줍은 듯 자신을 어필하는 간판과 의심스러운 긴 계단은 을지로에서는 이미 익숙한 코스입니다. 다행히 계단 끝 멀리 보이는 노란 조명과 수많은 포스터와 엽서들이 여기가 맞다고 손짓을 합니다. 의심을 거두고 차근차근 좁은 계단을 오르면 ‘응, 우리 열려있어!’ 라는 환영 인사가 반깁니다. 끼이익- 오래된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도탑다의 진짜 시대가 열립니다.
도탑다가 북카페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수많은 과거의 잡지를 들춰보고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던 시절의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곳이 북카페가 아닐 수가 없지요. 도탑다가 주는 이질적인 시간의 질감에 두리번 거리며 감탄사만 내뱉고만 있었습니다. 이 공간이 익숙한 사람들은 사장님과 인사를 하고 떠나기도 하고 취향이 담긴 잡지를 가득 자리로 가지고 와서 읽기도 했습니다.
도탑다에 자리한 사람들은 다양했습니다. 90년대를 추억하는 사람들, 그 시대를 동경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향수를 시작하는 사람들까지 스타일도 분위기도 다른 사람들이 도탑다가 만들어낸 과거 여행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저의 마음을 흔든 세일러문 키링과 고양이 면허증 가챠
도탑다는 레트로라기 보다는 빈티지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뉴트로'라는 새로운 단어가 과거의 것을 닮게 꾸며낸 것을 설명하지만 사실 레트로도 그렇죠. 과거의 것을 재현하려는 경향 의미합니다. 하지만 빈티지는 다릅니다. 예전의 것이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져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죠. 30년 전 생산되었던 옷, 20년 전 발간되었던 잡지, 10년 전 나왔던 굿즈처럼요.
일본의 빈티지 잡지 외에도 다양한 애니메이션 굿즈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쌓인 물건들을 어떻게 이렇게나 모았나 싶더라고요. 에반게리온이나 포켓몬, 스머프, 빈티지 뱃지 등 과거 일본의 만화나 기념품들을 좋아한다면 소장하지 않고는 못 배길 콜렉션이었습니다. 저는 고양이 면허증과 세일러문 키링을 업어와야하나 한참을 고민했어요.
사실 도탑다는 새롭게 찾았다기엔 이미 오래 사랑받아온 공간이자 이름이었어요. 카페로 자리잡기 전부터 SNS와 웹사이트를 통해 잡지나 키링, 피규어 등을 판매하면서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귀한 물건을 구할 수 있는 사이트로 유명했습니다. 이제는 도탑다라는 공간을 통해 그 당시의 감성을 가득 담은 순간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주인장은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오느냐며 감사를 전하지만 슬쩍 방문한 제게도 이 공간은 선물 보따리 같았습니다. 서브컬쳐를 즐기거나 빈티지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겠지요. 그렇게 도탑다는 간판 없이 좁은 계단 3층에 숨어있어도 사람들이 열심히 찾아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성원에 보답하듯 도탑다는 올해 봄 2층을 오픈해 일본의 다양한 빈티지 패션 아이템을 위한 공간도 꾸며놓았습니다. 비가 많이 오던 평일 낮이었는데도 2층도 3층도 사람이 가득했어요. 카페를 즐기지 못하더라도 많은 분들이 도탑다를 방문해 제품을 구경하고 구매해서 갔습니다. “이것도 있네!”, “이거 진짜 사고싶다” 라며 도탑다의 물건들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니, 무언가를 좋아하며 산다는 것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왼) 유튜브 채널 롤리스트릿 | (오) 도탑다 빈티지 숍 / 각 이미지를 누르면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도탑다는 인스타그램 외에도 일본의 서브컬처와 스트리트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롤리스트릿이라는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카페 이전부터 빈티지 숍으로 인기있었던 도탑다 사이트도 여전히 활발히 운영중입니다. 그저 일본이 아니라 과거의 일본을, 빈티지한 패션의 이야기를, 그리고 서브컬쳐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싶다면 을지로로 오세요.
도탑다에서 또 다른 시간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탑다
· 영업시간 : 월-화,목-금 12:00~21:30 토-일 12:00~20:00 매주 수요일 휴무
· 위치 : 서울 중구 충무로 52-2 3층
· 인스타그램 @_dotopda
사용 제품|리코 G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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