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친구 1이 말했다. "여기 한번 가봐. 좋아."
홍보 직무를 담당하고 있는 친구 1은 주말에도 습관처럼 기사를 검색했고 그날도 어김없이 뉴스를 읽다가 문득 자주 가는 장소가 떠올라 공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소파에 파묻혀있다시피 했던 친구 2가 벌떡 몸을 일으킨다. "야, 나도 괜찮은 곳 아는데."
볼일이 있어 간 성수동 골목을 누비다 우연히 발견한 괜찮은 곳이라며 휴대폰 갤러리를 열어 사진을 보여줬다.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내부는 푸릇푸릇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겐 때때로 창고가 필요하다. 그곳은 몸과 마음을 잠시 피난시키기 위한 곳이기도 하고 아지트처럼 목적 없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친구들은 이미 자신만의 비밀창고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한번 방문 후 잊히지 않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그런 공간.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었더니 확신에 찬 대답을 들려준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친구들의 비밀창고가.
감각적인 플랜트 숍, 성수 슬로우파마씨
온라인 마케터 J “초록색이 심신 안정에 좋다고 하지 않나. 슬로우파마씨엔 초록색이 가득해 마음이 곧 차분해진다. 비움이 필요할 때 이곳에서 식물들을 본다. 사실 유명한 곳이라 비밀창고라고 하기 머쓱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공간인 건 확실하다.” |
들어가자마자 흙냄새가 훅 끼친다. 눈 돌리는 모든 곳에 식물이 있어 슬로우파마씨는 작은 정원 같기도 했다. 이파리와 부딪히면 혹여나 상할까 조심조심 움직이며 감각적으로 꾸며둔 내부를 하나하나씩 살폈다.
내부는 생각보다 좁지만 층고가 높아 답답하진 않다. 식물과 식물을 기르는 데 필요한 도구들이 무질서 속에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고, 이제 막 식집사의 길로 접어든 혹은 만졌다 하면 생명을 꺼뜨리는 이들을 위한 식물부터 유리병에 박제된 말린 꽃들까지 종류가 꽤 다양하다. 이름 모를 식물들 사이에서 아는 것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초록빛을 내는 이파리들에서 생명력을 본다.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식물을 보고 있으면 왜 플랜테리어가 유행했는지, 왜 사람들이 창가에 작은 화분을 놓고 싶어 했는지 그 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잔잔해지고 식물에 집중한 머릿속엔 상념이 사라진다. 처음 보는 식물은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일정상 식물이나 관리법에 관해 물어보진 못했지만 대신 식물에게 치유를 받았다. '느린 약국'이지만 효과 좋은 빠른 처방이었다. 참고로 식물 정보는 슬로우파마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슬로우파마씨>
· 운영 시간: 화~일 13:00~19:00 (매주 월 휴무)
-09/14~18 추석 연휴 휴무
· 위치: 서울시 성동구 아차산로 11가길 26
홈페이지 / 인스타그램
큐레이션 된 수천 장의 엽서, 포셋 연희
디자이너 O "가끔 기다란 편지지보다 작고 납작한 엽서 위에서 뛰노는 그림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종이 위에서 숨 쉬는 각양각색 그림들, 그 뒤에 적힌 발신자의 마음. 엽서엔 이 두 가지가 한 번에 담겨 있다." |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이 즐겁고 기꺼운 이라면 높은 확률로 포셋 연희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종류도, 제작자도 다양한 그림엽서가 철제 선반 위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풍족해진다. 엽서 앞면은 일러스트부터 사진까지 작가의 취향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마음에 드는 엽서를 골랐다면 계산 후 바로 편지를 쓸 수 있는 공간도 작게 마련되어 있다.
포셋 연희엔 기록 보관함*도 있다. 보관하고 싶은 나의 기록, 추억들을 넣어둘 수 있다.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만 잔재했을 생각이 활자로 형체를 갖춰 기록되는 것이다.
*이용료 11,000원(최소 1개월 단위로 계약)
엽서 한 장을 골랐다. 앞면엔 귀여운 검은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누구에게 편지를 쓸까. 행복한 고민이 시작됐다.
<포셋 연희>
· 운영 시간: 화~일 12:00~20:00 (매주 월 휴무)
-09/17 추석 당일 휴무
· 위치: 서울시 서대문구 증가로 18 305호
인스타그램
나를 사색하기, 을지로 라이팅룸
언론 홍보 담당 J "언론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보니 보도자료를 많이 쓴다. 가끔은 딱딱한 글이 아닌 말랑한 글을 쓰고 싶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쓰고 싶을 때(글쓰기를 좋아한다.) 찾는 공간이다." |
등잔 밑이 어두웠다. 회사 코앞에 이런 낭만적인 곳을 두고 알아보지 못했다니. 당장 예약을 하고 방문했다.
라이팅룸은 머릿속 생각이든 숨겨둔 마음이든 간에 모든 것을 쏟아내게 만든다. Welcome to the writing room, where you listen to yourself. 이곳을 완벽하게 요약하는 한 줄이다. 내부엔 음악 소리, 글 쓰는 소리, 간혹 사진을 찍는 소리뿐이다. 조용하고 풍만하다.
'사랑을 믿나요?'라는 질문지를 받았고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고민했다. 창문 너머 을지로 골목을 내려다보다가 펜을 들었다. 어떻게 운을 떼야 할지 잠시 막막했지만 쓰다 보니 또 써지는 것이 글이었다.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답을 쓰고 라이팅룸을 방문한 사람들의 흔적을 좇았다. 이곳은 내 생각을 쏟아내는 곳이면서 타인의 글에도 응답할 수 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타인과의 조용한 교류가 라이팅룸 안에서 이어지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를 모르기에 용기를 내 마음 한 조각을 꺼내어 둘 수 있다.
머릿속, 마음속 용량이 가득 차 넘칠 것 같으면 라이팅룸을 가보자. 그저 쓰는 것만으로도 가벼워지는 감정을 이곳은 언제나 수용하니깐.
<을지로 라이팅룸>
· 운영 시간: 화~일 14:00~19:00
-09/16~18 추석 연휴 휴무
· 위치: 서울시 중구 퇴계로27길 40 예일빌딩 4층
· 네이버 예약에서 사전 예약 필수
-Writing Hour(7,000원), Reading Hour(8,000원), Slow Writing Hour(10,000원)
-쇼룸 구경은 별도 예약 필요 없음
예약 페이지 / 인스타그램
사용 제품|리코 GR3, GR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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