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괜히 책 표지를 넘겼다, 덮었다를 반복하게 됩니다. 어쩐지 소설 속 문장 한 자락쯤 품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가을은 그런 순간을 만드는 계절입니다. 마침 텍스트 힙 트렌드가 떠오른 데다가 지난 10일(목),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독서를 하겠다는 생각과 열망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불타고 있는 중이에요.
그래서 소개합니다. 곧 헤어질 가을을 곁에 두고 독서할 수 있는 쉼터가 서울 도심 속에 있거든요. 여기에 이제 등산과 산책을 곁들였습니다. 완만한 경사부터 찐 등산까지 굽이진 길을 올라서 도착한 곳에서 가을을 써봤습니다.
양천공원 책 쉼터
· 위치: 서울시 양천구 목동동로 111
· 이용 시간: 화~일 10:00~19:00
· 도서 대출 및 반납 불가
· 가는 법: 5호선 목동역 7번 출구 > 목동역 7번 출구. 진명여고 정류장에서 6620, 6623, 6625번 탑승 > 양천구청. 양천보건소 하차 후 도보 이동
신정동 목동 아파트 단지 근처 양천공원에는 무료로 이용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이 있어요. 인근 주민과 공원을 찾은 이들이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양천공원 책 쉼터입니다. 단층 구조이나 내부는 넓고 쾌적합니다. 내부에 화장실이 있어 공원 화장실까지 가야 하는 수고로움도 없었습니다.
작은 도서관만큼은 아니지만 소장 도서가 많은 편이고 앉을 수 있는 곳도 많았습니다.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을 맞으며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등 각자 할 일을 바쁘게, 또는 느리게 하고 있었습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이용되는 곳이라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선에서 어른이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수도 있어요. 가사가 없는 음악이 은은하게 흐르기도 하고요. 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독서문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어서 이름만 책 쉼터일 뿐이지 도서관 역할에 충실한 곳이었어요.
책을 읽다가, 공부를 하다가 눈이 피로하면 바로 앞에 탁 트인 공원이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산책하는 강아지, 뛰노는 아이들,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금세 환기가 될 거예요.
봉제산 책 쉼터
· 위치: 서울시 강서구 초록마을로 69-6, 69-9
· 이용 시간: 화~일 09:00~18:00 (점심시간 12:00~13:00 제외)
· 도서 대출 및 반납 불가
· 가는 법: 5호선 화곡역 4번 출구 > 화곡역 4번 출구 정류장에서 마을버스 강서 01번(*약수터 행*) 탑승 > 강서구립봉제산어르신복지센터 하차 후 도보 이동
한차례 비를 맞은 봉제산 근린공원은 어느 때보다 초록빛으로 빛나고 공원엔 비 온 뒤 냄새를 맡는 강아지들의 산책이 한창입니다. 조용한 곳에 자리해 독서하기에 안성맞춤이다란 생각이 들던 차 책 쉼터가 보였습니다. 언뜻 커 보이지만 쉼터는 2층만 사용 중이며 규모가 아담해요.
아담한 만큼 비치된 도서는 많지 않고 도서관 열람실에서 볼법한 다인용 테이블과 1인용 독서 테이블이 있어요. 평일 오후에 방문했음에도 책 쉼터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독서 분위기보다는 면학 분위기에 가까웠습니다. 꽤 정숙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된다면 1인용 독서 테이블에서 통창으로 보이는 공원의 푸름을 느끼며 책 한 권 읽어보는 것을 추천해요. 뷰가 좋거든요.
쉼터 바깥에는 쉴 수 있는 휴게 공간과 산책로도 있어 책을 읽다가 혹은 공부를 하다가 경직된 몸을 풀기에도 좋아 보였습니다. 비 온 뒤 맑음이라고 다소 쌀쌀했지만 쾌청한 날씨 덕인지 휴게 공간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분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어요. 눈을 돌리는 모든 곳이 푸르러서 저도 덩달아 푸르게 물들었습니다.
*강서 01번 운행 루트는 약수터 방향이 있고, 등촌역 방향이 있었습니다. 화곡역에서 봉제산 책 쉼터로 갈 계획이라면 약수터 행 강서 01번 버스인지 확인 후 탑승하세요.
인왕산 숲속 쉼터
· 위치: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산4-36
· 이용 시간: 화~일 10:00~17:00
· 도서 대출 및 반납 불가
· 가는 법: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 경복궁역 3번출구 정류장에서 7022, 7212, 1020번 버스 탑승 > 자하문 고개. 윤동주문학관 하차 후 등산
숲속 쉼터 가는 길을 알리는 이정표
천국의 계단
이곳이야말로 독서에 등산을 곁들인 것이 아니라 등산에 독서를 곁들인 곳입니다.
이 길이 맞나? 의문이 들어도 일단 직진합니다. 쉼터로 가는 이정표가 잘 되어있지만 간혹 이정표에 쉼터가 없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앞으로 걷고 또 걷다 보면 인왕산 숲속 쉼터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병사들의 거주공간이었던 인왕 3분초가 숲속 쉼터로 재탄생, 성벽길 혹은 인왕산 등산로를 오른 사람에게만 모습을 비추는 이곳은 꼭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을 들게 했습니다. 저는 더숲 초소책방 쪽이 아닌 윤동주문학관을 출발 지점으로 해 성벽 길을 따라 올랐고, 계단 높이가 제법 높아 10도 안팎을 웃도는 날씨에도 등줄기에 땀이 고였어요. 윤동주문학관부터 숲속 쉼터까지 딱 30분이 소요됐습니다.
도서가 많지 않기 때문에 책을 읽고자 한다면 직접 책을 들고 방문하는 것이 좋아요. e-book이나 소장 책을 읽는 사람, 랩톱으로 작업하는 사람 등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도 다양했습니다. 정숙한 분위기는 아니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등산객도 있었지만 시끄럽진 않았으며 통창 너머로 보이는 나무와 숲 풍경이 예술입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인왕산의 풍경 앞에 등산의 열기가 점점 사그라듭니다.
내려갈 땐 산을 오르느라 놓쳤던 풍경과 감각이 비로소 느껴집니다. 가을이기에 가능한 청명한 하늘과 드문드문 핀 들꽃, 바람 냄새가 나는 찬 기운과 돌산의 표면까지 눈에 선명하게 새겨지는 맑은 공기 같은 것들이요.
오동숲속도서관
· 위치: 서울시 성북구 화랑로13가길 110-10
· 이용 시간: 화~일 09:00~18:00
· 대출 가능. 야외(회랑)에서 내부 비치 도서 열람 희망 시 대출 후 이용 가능
· 가는 법: 4호선 미아사거리 역 1번 출구 > 미아사거리역 2번 출구 정류장에서 성북 10번 버스 탑승 > 하트마트 편의점 하차 후 도보 이동
· 홈페이지(바로가기)
*폭우, 태풍, 산사태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오동근린공원 폐쇄나 출입 통제 상황이 긴급하게 발생할 경우 도서관 역시 임시 휴관 또는 제한적으로 운영될 수 있음
어떤 책이 있는지 구경하고 있는데 10월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아이들이 부르는 '독도는 우리 땅' 노래가 바깥에서부터 희미하게 들려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다시금 가사가 없는 노래와 원두 갈리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가 그 공간을 채웁니다.
목재파쇄장이 숲속 도서관으로 변신했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도 외관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하월곡동 오동근린공원 내에 있는 오동숲속도서관은 한국건축협회 건축상을 수상한 건물로, 전경 사진이 꽤 유명하거든요.
작은 도서관보다는 살짝 더 큰 규모의 오동숲속도서관은 '독서 환경'을 중시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답게 보유 장서도 많은 편이었지만 무엇보다 독서 공간이 다채로웠어요. 1인용 소파부터 '숲속' 테마에 맞춘 듯한 캠핑st 독서 존, 그리고 건물 외부 곳곳에도 방석과 책꽂이가 놓여 있습니다. '책 읽는 성북' 슬로건이 건축물로 탄생된 것 같았어요.
때마침 '책 읽는 성북' 행사가 진행 중이어서 공원 한 귀퉁이에 빈백과 캠핑 의자가 설치돼 오가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발걸음을 단번에 잡아채는 한강 작가 특별전까지. 이토록 책에 진심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도서관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 쯤 방문해도 좋은 곳이에요. 도서관과 산책을 모두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들러보길 추천합니다.
저는 4호선 미아사거리 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요. 역에서 도서관까지 약 30여 분이 소요돼 산책 겸 걸어갈까 잠시 고민 했었지만 버스를 탄 건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거리가 제법 있기도 하지만 월곡동에 진입하면서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 여러 번 등장하거든요. 우리, 책 읽을 기운은 남겨야 하잖아요.
사용 제품|리코 GR3, GR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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