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GHLIGHT
-애월 해안가를 마주한 아름다운 풍광의 카페
-다양한 사진 잡지를 보는 시간
비가 몰아치는 산에서 조난을 당해도 뽀송뽀송하게 체온을 유지해 줄 것만 같은 반질거리는 등산 재킷과 마라톤도 출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깃털처럼 가벼운 러닝화를 가지고 있는데 등산과 러닝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웃통을 벗으면 볼록하게 뱃살이 튀어나오는 비루한 몸을 들키기 싫어 수영도 하지 않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많은 이가 즐거워하는 유산소 운동은 전무하리만큼 하지 않습니다. 사실 유산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거의 모든 운동을 하지 않는 편인데 심지어 산책마저 즐기질 않으니 제 자신이 생각해도 건강이 사뭇 염려스럽습니다.
하지만 연례 행사에 가까울 만큼 가끔 긴 거리를 걸을 때가 있는데 추위가 더위로 바뀌는, 혹은 더위가 추위로 바뀌는 때의 계절입니다. 몇 해 전, 그날도 그런 날이었습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고 있었던 때였는지, 여름이 가을로 바뀌던 때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다만 연한 파란 빛깔의 하늘에서 뿜어내는 광량은 쨍하고 코로 들어오는 공기의 온도는 숨 끝에 약한 냉기를 살며시 남기는 정도의 계절이었습니다.
'오늘처럼 맑은 날씨에 걷지 않으면 또 한동안 걸을 일은 없을 것 같아.'
저는 왜인지 걷고 싶어 함께 차를 타고 있던 일행에게 적당한 곳에서 내려 달라고 했습니다. 슈퍼마켓 하나 없는 중산간 중턱의 작은 마을에 내린 저는 저 멀리 아래로 보이는 바다를 향해 무작정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딱히 바다가 목적지였다기 보단 오르막을 오르는 것이 싫어서 택한 선택인지라 그나마도 운동의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었지만 덕분에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워 바다는 성큼성큼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차로 다니던 큰 길을 벗어나 낯선 마을의 작은 골목을 지나치자 어쩐지 유치하면서도 즐거운 감성들이 피어오릅니다. 사진 제목으로 너무 남발되어 이제는 조금은 오글거리는 ‘소경(小景)’이란 단어가 어쩐지 너무도 어울리는 풍경입니다. 연신 셔터를 눌러 대며 걸었다 멈췄다를 반복하니 어느새 티셔츠 안에서 피어오르는 열기가 느껴지고 콧잔등에는 땀이 맺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