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블랙박스를 가려야 하고 허가받은 차량임을 알리는 경광등을 달아야 하는 곳. 검문소에 다다르자 내비게이션에서 길이 사라지는 곳. 남방한계선과 민간인 통제선 사이, 허가가 있어야만 출입이 가능한 민간인 통제구역에 오늘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가 있습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곳에서 자연은 순리대로 흘러가고 있었고 계절을 빨리 맞이해 이미 겨울 초입에 다다라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하늘이 걸립니다. 부러지고 꺾여도 본연의 생명력으로 다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나뭇잎을 떨쳐내는 그 생태(生態)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특정 구역엔 발을 내디딜 수 없었던, 휴전 후 60년 만에 확대 개방된 강원 철원 DMZ생태평화공원 용양습지 탐방로입니다.
[용양습지 탐방로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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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생태평화공원 방문자 센터
탐방을 위해선 사전 전화 예약 또는 DMZ생태평화공원 방문자 센터에 방문해 신청을 해야 하며(2일 전까지), 당일엔 출발 시간 30분 전까지 방문자 센터에 도착해야 합니다. 탐방 코스는 약 3시간이 소요되는 십자탑 코스, 약 1시간 30분~2시간이 소요되는 용양습지 코스가 있고 각 코스는 10시와 14시, 일일 두 타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평일이었음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탐방을 하러 모인 가운데 DMZ생태평화공원이 위치한 김화읍과 탐방 코스, 철원쌀(같은 부피라도 다른 쌀에 비해 밀도가 높아 무게가 더 나간다는!) 소개와 유의 사항을 듣고 출발했습니다. 그 사이 차에는 민간인 통제구역 출입할 수 있다는 경광등과 천이 설치됐고, 출발 전 차량 블랙박스를 가릴 주머니를 받았습니다.
주차장까지 제법 이동 거리가 있었는데 검문소와 가까워질수록 왠지 모를 긴장감이 엄습했습니다. 네비게이션도 더 이상 길 안내를 하지 않고요. 신기함이 스며든 긴장감을 느끼며 주차장에 도착, 이제부터는 걸어서 가야 합니다.
용양습지 주차장~남방한계선
*안전을 위해 군인이 동행합니다.
*사진 촬영이 가능한 곳은 따로 안내가 있으며 해당 구역에서만 촬영이 가능합니다.
용양습지 탐방로가 있는 강원 철원군 김화읍은 원래 강원도 김화군이었습니다. 해방 후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김화군 전 지역이 북한에 포함됐었으며 6.25 전쟁 때는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격전지이기도 했습니다. 휴전 후엔 남한에서 김화 지역을 수복(收復) 하긴 했으나 철원군으로 병합돼 지금의 김화읍이 되었습니다. 한때 번화했던 김화군은 전쟁으로 100년 이상 된 집과 나무가 없을 만큼 대부분의 흔적이 사라졌는데 그 역사는 방문자 센터 뒤편 김화 이야기 전시관과 그 주변에 형태만 남은 빈집에서 찾을 수 있어요.
용양습지 한가운데에는 휴전 이후 비무장지대에서 경계 근무를 섰던 병사들이 오가던 출렁다리가 있습니다. 지금은 세월의 풍상에 낡아 더는 다리 기능을 못하지만 대신 가마우지, 두루미 등 새들이 머물렀다 가는 쉼터가 된 곳이에요.
각 스폿마다 센터 해설사님께서 첨언을 해주시는데요. 이곳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쉽게, 재미있게 전달하시는 것은 기본, 적재적소에 개그와 관련 일화를 넣는 노련함 덕에 1시간 30분 코스가 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국군이 관리하고 있지만 용양보 부근은 UN 관할 땅입니다. 때문에 사진처럼 태극기와 유엔기가 같이 게양되어 있어요. 해설사님께서 뒤쪽 산이 나오지 않게 아래에서 위로 사진을 촬영하면 멋진 구도가 나올 것이라 알려주신 덕에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태극기와 유엔기가 있는 곳, 용양보 통문에서 다시 되돌아가야 했지만 지난해부터 이 통문 안쪽을 개방해 금강산 전기철도를 거쳐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루트가 되었습니다.(개방 이전 탐방로 루트와 현재 루트에 다소 차이가 있으니 개방 이전에 방문하셨던 분들은 재방문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용양습지에서 가장 놀랐던 점은 바닥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물이 정말 맑다는 점이에요. 인적이 드문 곳에서 순환하는 물이 이렇게나 맑고 깨끗하다는 것을 용양습지에서 깨달았어요.
물이 맑다 보니 자라와 두꺼비가 서식하고, 여름에는 자라가 돌 위로 올라와 볕을 쬐기도 한다고 해요. 두꺼비 역시 알을 낳기 위해 물에서 올라와 금강산 전기철도를 건너다보니 그 시즌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철도를 점령한 두꺼비를 밟을까 앞을 볼 새가 없다죠. 해설사님이 설명을 잘해주셔서 초여름에 볼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이 궁금해졌어요.
금강산전기철도
용양보 통문을 지나 금강산 관광객을 수송했던 금강산 전기철도 앞에 왔습니다. 철원역~김화역~내금강역까지 총 116km 길을 연결했던 금강산 전기철도가 한때 금강산으로 향하는 운송수단이었다는 것이 기분을 묘하게 만들어요. 금강산은 줄곧 '언젠가는 갈 수 있을까?' 물음이 뜨는 곳이었기에 금강산으로 이어졌던 이 철길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기도 했어요. 신기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철로는 방문객 편의를 위해 실제 폭 보다 넓게 재건됐고, 군데군데 우리나라 군인과 북한군이 남긴 흔적이 새겨져 있어요. 철로 양옆은 지뢰 숲이고, 그 지뢰 숲에서 자라난 나무들이 철로를 따라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은 잎이 떨어져 앙상한 나뭇가지만이 소실점을 따라 뻗어 있지만 한창 푸를 때는 색다른 장관을 만듭니다. 또다시 초여름의 철원이 궁금해집니다.
철길 끝에는 전차 한 량이 놓여 있는데 이 안에서 바라보는 용양습지 뷰가 마치 액자에 박제된 사진처럼 보이니 놓치지 마시길.
돌아가는 길
1시간 30분에 걸친 탐방이 끝났습니다. 가파른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어 걷기에 좋고 여유를 가지고 자연 그대로를 느끼기에도 좋았어요. 정말 난이도 하(下)입니다.
무엇보다 이곳에 남은 산물이 역사적 아픔이면서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맑은 물과 멸종 위기 동식물, 굳건한 생명력이 박동하는 생태계라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쉽고 재미있는 탐방이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순간이 많아서 여운도 꽤 깊었습니다.
철원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평소에 볼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있고 전쟁 이후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는 탐방 한 코스 슬쩍 추가해 보세요.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경험이 될지도 몰라요.
DMZ생태평화공원 탐방
(1) 십자탑 코스
- 출발 시간: 10시, 14시 / 소요 시간 약 3시간 / 난이도 중
(2) 용양습지 코스
- 출발 시간: 10시, 14시 / 소요 시간 약 2시간 / 난이도 하
*2일 전까지 예약 신청 가능(전화 예약, 방문 예약)
*당일 출발 시간 30분 전까지 센터 도착
-방문자 센터: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생창길 479
*현장 상황에 따라 입장 제한이 있을 수 있음
· 이용 요금(일반 대상)
-성인 10,000원(상품권 5,000원 지급) / 성인 단체 8,000원(상품권 4,000원 지급)
-어린이/청소년 4,000원(상품권 2,000원 지급) / 어린이/청소년 단체 3,000원(상품권 1,000원 지급)
*감면 대상자 및 요금 확인은 DMZ생태평화공원 홈페이지 참고
-DMZ생태평화공원 홈페이지(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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