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카페는 음료를 마시는 곳 이상의 기능을 하죠. 마치 돈을 지불하고 그 공간을 빌리는 것과 다름없어요. 그렇게 빌린 공간에서 우리는 음료를 마시며 공부를 하고, 독서를 하고, 일을 하고, 대화를 하고, 사색도 합니다. 다만 일반 카페에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공부와 독서를 하자니 종종 생각과 의식이 다른 데로 빠지곤 해요.
하지만 해결책과 대안은 언제나 있는 법. 북카페는 바로 그 해결책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홍대 일대엔 대형 출판사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북카페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지금은 소수의 카페만이 남아있지만 당시 그 수만 해도 8곳이었다죠.*
*출처: 홍대는 북카페 천국...출판사 직영만 8곳(https://www.ktv.go.kr/content/view?content_id=495398)
출판사는 북카페를 통해 자사 도서뿐만 아니라 좋은 도서를 큐레이션 하면서 책이란 콘텐츠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을 획득했습니다. 사람들은 적당한 소음 속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업무를 볼 수 있게 됐고, 나아가 도서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됐고요. 무엇보다 특정 출판사가 펴내는 도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기도 해요.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출판사 운영 북카페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오가는 발길을 기다리는 곳이 있습니다.
까페창비 with 브라운핸즈
까페창비
내부가 제법 널찍한 까페창비는 출판사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에서 운영하고 있는 북카페입니다. 망원역 1번 출구에서 2~3분 거리에 있고 접근성이 좋아 처음 가는 곳이었는데도 찾기 쉬웠어요.
일하는 사람, 책 읽는 사람, 토의하는 사람, 대화하는 사람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니 '북카페'라고 했을 때 흔히 예상하는 아늑하거나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창이 큰 덕에 문지살롱과 엠북카페에 비해 전체적으로 밝고 활동적인 무드가 감돕니다. 모두 개의치 않고 본인 일에 집중하고 있어서 오히려 부담 없이 머무를 수 있었어요.
까페창비에 진열된 도서는 대부분 판매용이며 열람용 도서는 주문하는 곳 근처에 조그맣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겉표지에 '까페창비' 스티커가 붙은 책만 열람이 가능하고 판매용은 구매 후 자리에서 읽을 수 있어요. 이번에 다녀온 모든 출판사 북카페가 그러하듯 자사에서 펴낸 책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가 권력(?)을 느낀 부분은 요즘 대여하기도 힘든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책이 쌓여 있는 매대였습니다. 당연합니다. 두 책 모두 창비에서 출판했으니까요. 도서 외에도 텀블러와 컵, 창비가 펴낸 어린이 동화 속 캐릭터 중 하나인 깜냥이 굿즈도 판매하고 있어요.
음료나 디저트는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면 되고 직접 픽업, 반납하는 시스템입니다. 정말 자유롭고 편안히 있다 갈 수 있는 곳이니 혹여나 정숙한 분위기가 부담돼 방문을 망설였던 분이 있다면 첫 방문으로 딱입니다.
· 위치: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12길 7 1층, 지하 1층
· 영업 시간: 월~금 08:30~21:00, 토~일 12:0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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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살롱
지하 1층 문지살롱
출판사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문지살롱의 공간은 조금 독특해요. 1층은 문학과지성사의 역사와 현재를 보여주는 쇼룸 문지포스트로, 지하 1층은 북카페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 문지포스트엔 문학과지성사가 펴낸 소설가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중심으로 공간이 꾸며져 있고 스피커에선 한강 작가가 직접 읽어주는 책 일부가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이 외에도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시인들의 글을 보고 감상도 남길 수 있으니 카페로 내려가기 전에 필수 코스로 들러보세요.
문지살롱은 출입문을 기준으로 왼편엔 북토크와 같은 이벤트가 열리는 문지페이스가 있고 오른편에서 도서 구매와 음료 주문을 할 수 있습니다. 중앙 공간은 콘셉트가 달라져 방문할 때마다 출입문을 통해 보이는 이곳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기대하는 소소한 재미가 있을 듯했어요.
문지살롱도 내부가 작은 편이 아니었지만 인센스 향, 주광빛을 띠는 조명 덕인지 아지트 같은 분위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또 카페가 대체적으로 고요하고 특유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몸이 이완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할 일을 하며 본인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분들에게 제격인 곳이었습니다.
문지살롱에 진열된 도서 역시 대부분 판매용이다 보니 조심히 읽어달라는 문구를 책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어요. 까페창비에선 열람용 도서가 조금이라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문지살롱에선 찾아보기 어려워 조금 아쉬웠습니다.
음료를 주문하면 도장 쿠폰과 함께 오늘의 시점(詩占)을 받게 되는데요. 제가 이날 받은 오늘의 시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당신들은 노래에 실려 건너편 봉우리로 가세요." - 서영처, 「다시 산꼭대기 수선화 중창단」 (『말뚝에 묶인 피아노』에서)
· 위치: 서울시 마포구 잔다리로7길 18 지하 1층
· 영업 시간: 화~토 12:00~21:00 (매주 일, 월 정기 휴무)
-12월 25일 크리스마스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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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북카페
엠북카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앞선 두 북카페와는 다른 도서 큐레이션이었습니다. 경제경영, 인문, 에세이, 자기계발 관련 도서를 출판하는 미래의 창만의 정체성이 확고하게 느껴지는 책들이 높은 책장에 가득 꽂혀 있어요. 참고로 도서 구매 시 음료 쿠폰이 지급됩니다.
출입문 근처는 한낮의 햇빛 덕에 밝았지만 카페 안쪽은 북카페답게 집중할 수 있도록 조명이 어둡습니다. 방문했던 북카페 중 가장 넓고 좌석이 많았어요. 그리고 테라스가 있는 곳이었는데요. 테라스 출입 시에는 매장 내에 있는 책을 가지고 나갈 수가 없으니 유의하세요.
분위기는 까페창비와 비슷했습니다. 까페창비보다 조금 더 안락한 느낌을 준다는 점을 제외하면 카페에 있던 손님들 모두 편안하게 대화를 주고 받고 업무를 보는 분위기였어요. 그럼에도 소리가 크지 않아 책을 읽기에 무리가 없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주문한 스노우 블랙(아인슈페너)을 마셨는데요. 차가운 크림을 뒤따라 들어오는 따뜻한 커피의 온도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온도가 마치 엠북카페 같았어요.
· 위치: 서울시 마포구 잔다리로 62-1 1층
· 영업 시간: 월~금 08:00~21:00 (매주 토, 일 정기 휴무)
-12월 25일 크리스마스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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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1) 더 이상 문학동네의 북카페는 아니지만
독특한 건축 인테리어로 유명한 카페 꼼마는 원래 출판사 문학동네가 연 카페였습니다. 2011년 3월, 문학동네는 독자와 직접 만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카페 꼼마 1호점을 열었고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곳에 닿았다가 흩어졌습니다. 2020년 5월, 카페 꼼마가 독립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됐지만 여전히 책과 사람을 잇는, 일상의 쉼터로써 기능하고 있습니다.
· 위치
-합정점: 서울시 마포구 포은로 49
-송도점: 인천시 연수구 센트럴로 263
-이 외에 역산마크로젠점, 모빌리티뮤지엄점, 여의도신영증권점, 홍대점, 갤러리아 광교점이 있음
번외 2) 마포구는 아니지만
마포구 외 지역에도 출판사가 운영하는 북카페가 있습니다.
출판사 동아시아 허블이 필동에서 운영 중인 카페 허블(1층)&남산 책방(2층)의 묘미는 커다란 창문으로 내려다보는 남산골 공원일 텐데요. 그 뷰가 아름다우니 2층 책방에 들러보세요. 물론 1층 카페에서 필동 골목을 구경하는 것도 좋은 디저트가 돼요.
효형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카페눈은 파주출판문화산업단지에 있는 만큼 '북카페'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아닐까 싶은데요. 북카페눈은 2012년 출판 단지에 생긴 1호 북카페입니다. 출판 단지가 만들어졌을 때 북카페눈 대표는 이곳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책과 커피가 잘 어울리니 카페를 해야겠다고 결심, 출판사 책 창고를 리모델링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시그니처는 특제 연유 베이스와 수제 팥이 올라간 우유빙수랍니다.
*출처: 따뜻한 온기와 출판도시 역사 품은 1호 북카페-'북카페 눈'(고양신문, 2020.04.24)(https://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54753)
· 위치
-카페 허블&남산 책방: 서울시 중구 필동로8길 73 1, 2층
-북카페눈: 경기 파주시 회동길 125-11 효형출판 1층
번외 3) 마포구도 아니고 북카페도 아니지만
용산의 오래된 목재 창고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올해 금성출판사가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복합문화공간 KCS(Kumsung Culture Space)를 오픈한 것인데요. 다양한 지식 교류가 오가는 교육 공간 '싹', 카페 겸 크고 작은 이벤트가 열리는 '흙', 엄선한 도자 컬렉션을 만나볼 수 있는 뷰잉룸과 출판사 아카이브 전시관, 국내외 젊은 작가들의 굿즈와 작품을 판매하는 곳이 모인 '뿌리'까지. 각 공간의 이름마저도 아름답고 정겹습니다.
· 위치: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2가 2-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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