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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매거진

행복을 찍는 사진작가, 안나&다니엘
LIFEArt & Culture
작가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행복을 찍는 사진작가, 안나&다니엘》사진전
202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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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오랜만에 들어간 인스타그램에서 재생 바가 오른쪽에 다다를 때까지 넘기지 못하고 집중한 릴스를 만났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벽면에 쓱싹쓱싹 색을 주더니 곧 모자를 쓴 여자의 머리는 꽃의 암술과 수술이, 몸은 꽃잎이 되었습니다.

 

 

안나(@anniset), 다니엘(@drcuerda) 인스타그램

 

 

여자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습니다. 달걀의 노른자가 되기도, 선물 상자의 리본이 되기도 했거든요. 어떤 날은 자신이 아닌 건물의 창문을 풍선과 피아노로, 모자를 카메라 렌즈와 태양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의 여러 가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여자와 남자, 안나와 다니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사진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안나와 다니엘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그런 안나와 다니엘의 작품이 예술의전당에 도착했습니다. 《행복을 찍는 사진작가, 안나&다니엘》이란 이름으로요.

 

전시는 크게 4개의 파트('¡Musica, Maestro!', 'Curiocities', Ideas come true', 'What the Hat?!')와 1개의 비하인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파트엔 안나와 다니엘만의 유머가 모두 녹아 있지만 그 유머를 보여주는 방식은 조금씩 달라요.

 

'음악 대가!(¡Musica, Maestro!)'는 음표, 악기 등 음악과 관련된 모든 청각적 요소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파트입니다. 4분 쉼표는 뜨거운 차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되고 8분 음표는 그네가 됐어요. 사람의 발자국은 높은음자리표를 만들기도 하고 사람 자체가 플레이어 재생 바가 되어 음악을 표현합니다. 신기한 건, 작품 속 4분 쉼표가 음악 기호 그대로 느껴지지만 동시에 작가가 의도한 대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안나&다니엘 작품의 힘이기도 한데요. 관람자는 작가가 의도한 유머를 자연스럽게,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됩니다.  

 

 

(왼) 「And There was Music」(2023), (오) 「Swing a song」(2023)
「On Repeat」(2023)

 

 

'호기심X도시(Curiocities)'는 건축을 전공한 두 사람의 섬세한 시선이 돋보이는 파트입니다. 우리는 건축학적으로 뛰어난 혹은 특이한 건축물에 관심을 드러내지만 대개 그 관심은 건물 그 자체에 한정되어 있어요. 안나와 다니엘은 건축물을 이루는 세부 요소에 주목합니다. 덕분에 창문은 웃는 눈이 되고 건물의 세로줄에 우산을 드리우자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안나와 다니엘이 건축의, 건축 주변 풍경의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이때만큼은 사진에 찍힌 건물과 사람이 아니라 건물을 구성하는 요소가 돼요.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건축을 하나, 하나 뜯어본 두 사람의 시선이 일상에서 그냥 지나쳤던 것들을 재미있는 작품으로 바꿨습니다. "도시는 우리에게 놀이터와 같아요." 안나와 다니엘은 평범한 일상 공간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Faceade」(2018)

(왼) 「Tiltgether」(2021), (오) 「Stick to the Plan」(2018)
「Similaritree」(2019)

 

 

'상상은 현실이 된다(Ideas come true)'는 단순한 이미지에 얼마나 밀도 높은 유머와 색감이 담길 수 있는지, 그 끝없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안나와 다니엘은 사진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장면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 수작업이 빛을 발하는 파트가 바로 '상상은 현실이 된다'입니다.

 

안나와 다니엘은 원하는 이미지를 실현하기 위해 소품을 직접 제작하고 색칠하고 수집합니다. 작품을 이루는 모든 요소에 두 사람의 손길이 묻어 있어요. 그 작업 과정은 전시 내 'Behind the Camera'에서 더욱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미지는 특별한 설명 없이도 바로 이해될 만큼 간결하고 단순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람의 다리가 아이스바의 막대구나, 사람 몸의 일부가 풍선이 되었구나-하고 말이죠. 작가가 미니멀하지만 그 안에서도 명확한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작품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Orange Pantsicle」(2024)
「inteLIGHTgent」(2023)
(왼) 「Jewel in the Crown」(2024), (중) 「Blown Away」(2023), (오) 「Hatabouts」(2024)

 

 

앞서 안나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모자야말로 무엇이든 될 수 있었습니다. 밀짚모자가 페퍼로니가 되고 카메라 렌즈가 되고 태양이 될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이게 모자라고?!(What the Hat?!)'는 일상의 물건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만났을 때 어떤 변신을 거듭하는지 보여줍니다. 후에 언급하겠지만 요시다 유니가 가장 많이 떠오른 부분이기도 했어요.

 

국내에 많이 알려진 작품들이 있는 파트였고 시각적 임팩트가 강하기도 해 많은 관람객들이 이곳 포토존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했어요. 이 전시의 포토존이 좋았던 이유는 관람객이 직접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관람을 하다 보면 한 번쯤은 '이 모습을 따라 하고 싶다'라는 다소 충동적인 생각이 드는데요.(그야 작품이 워낙 재미있고 익살스러우며, 우리는 평소에 실행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 욕구를 이곳에서 모두 풀 수 있어요.

 

 

(왼) 「Pizza Hat」(2024), (오) 「You Drive me Daisy」(2023) 

 

(왼) 「Scorching Hat」(2024), (오) 「Hatperture」(2021)

 

왼쪽부터 「Hatventure」(2024), 「Hatcuracy」(2022), 「Spacecial」(2019), 「In a Hatbeat」(2019)

 

포토존

 

 

 

아티스트 이상의 연금술사

 

안나&다니엘 사진전을 관람하면서 일본 그래픽 디자이너 '요시다 유니'의 작품이 연상됐습니다. 우선 컴퓨터 그래픽, 사진 편집 프로그램 사용을 자제한다는 점에서 이들을 연결시킬 수밖에 없었는데요.

 

"물론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하는 게 쉽기는 하죠. 하지만 제가 상상했던 것들을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수작업이에요.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거든요." -요시다 유니

 

"놀랍거나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정말 기본적인 이미지 처리 외에도 우리는 사진 편집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고 모든 장면을 만듭니다. 대신 다양한 일상 사물, 예상치 못한 장소, 자연광을 사용하여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장면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설정했습니다." -안나&다니엘

 

이들이 수작업을 고수하는 이유는 인터뷰에서 알 수 있고, 그 이유가 꽤 닮아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추측건대 손은 많이 가지만 더 사실적이고 능동적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처음부터 쌓아나갈 수 있음에서 오는 어떤 성취감과 고취감이 크지 않을까요?

 

또 물체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여 아이디어를 완성한 점, 발상의 전환으로 익숙한 것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이 비슷하게 다가왔어요.

 

전자는 과일을 조각 내 모자이크처럼 표현한 요시다 유니의 「LAYERED」나 다양한 물체로 트럼프 카드를 새롭게 정의한 「Playing Cards」, 안나&다니엘의 'Curiocities' 파트가 해당될 것 같고요. 요시다 유니가 입술을 꽃잎으로 만들었다면 안나와 다니엘은 빨간 원피스를 입은 몸을 꽃잎으로 만든 작품이 후자에 해당될 것 같네요.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 상상력과 유머가 돋보이는 것 또한 비슷한 부분입니다.

 

▷21세기 연금술사, 요시다 유니 기획전 《Alchemy》 (바로가기)

 

 

(왼) 요시다 유니 「LAYERED」(2018), (오) 안나&다니엘 「Rainstorming」(2019)

 

(왼) 요시다 유니 「Flower Lips」(2021), (오) 안나&다니엘 「Flowergasted」(2021)

 

 

다른 점이라 하면 요시다 유니는 그가 표현한 디테일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면 안나&다니엘 작품은 전체적인 그림 안에서 조화를 찾아보게 만듭니다. 안나&다니엘 작품이 대체적으로 풀샷이 많은 이유도 이와 관련되어 있진 않을지 추측하게 보게 돼요. 또 안나&다니엘 작품은 그들이 건축의, 캔버스의 일부로 기능해 작품 속 하나의 물체로 활약한다는 것도 다르고요.

 

확실한 건 요시다 유니, 안나&다니엘, 세 명의 아티스트는 집념과 노력으로 확고한 작품 세계를 세운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작품의 비밀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 'Behind the Camera'
작품 옆에 설치된 제작 영상을 감상 중인 관람객들
「High-Speed Bubbles」(2022)

 

 

일부는 작품 옆에 제작 영상 플레이어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어 사진을 찍는 과정과 결과물을 한 번에 볼 수 있었고, 여러 가지 작품 제작 비하인드 영상을 볼 수 있는 파트도 있습니다. 전시 마지막엔 안나와 다니엘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이 나오기도 하고요. 사진을 찍기 위해 사막을 찾아가고, 가장 알맞은 색을 머금은 종이를 구하고, 색을 칠하고, 구조물을 설치하고, 스케치를 하는 일련의 노력은 그들의 작품이 결코 충동적이거나 혹은 손쉽게 완성되지 않았음을, 모든 것은 철저한 계획과 과정 아래에서 탄생되었음을 뒷받침합니다. 그 노력의 산물이 유머와 유쾌함이란 것까지 완벽해요.

 

 

사진전 MD

 

 

가끔 하루가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똑같거나 비슷한 풍경을 눈에 담은 채 목적지로 향해요. 달라지는 것이라곤 계절에 따라 해가 빨리 뜨느냐, 늦게 지느냐의 차이겠네요. 그래서 늘 보던 건물, 익숙한 공간에서 새로움을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요. 안나와 다니엘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창조하는 게 아니라 익숙함에서 살짝 변주를 줌으로써 특별함을 만들었습니다. 두 작가의 인터뷰에서 엿볼 수 있듯 그 변주를 찾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테지만요.

 

하지만 도시를 잠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단 가능성, 그것이 지루한 하루에 짧지만 강렬한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이 전시를 통해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습니다. 내 삶의 무언가를 꼭 바꿔야겠다는 결심이 아니더라도 안나와 다니엘의 사진이 재미있고 기발하니 사진 그 자체를 음미하고 즐겨보시기를 바랍니다. 충분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행복을 찍는 사진작가, 안나&다니엘》
· 기간: 24.12.21.(토)~25.03.30.(일)
· 관람시간: 10:00~19:00 (매주 월 휴관/입장 마감 18시 20분)
·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 관람요금
-성인(만 19세 이상) 15,000원
-유아, 어린이, 청소년(36개월 이상~만 18세 이하) 10,000원
-36개월 미만, 장애인/의사상자/국가보훈대상자 본인 및 동반 1인, 예술의전당 후원회원 본인 무료
· 할인
-예술의전당 회원(골드 4매까지, 블루/그린/법인/예당우리카드회원 2인까지) 2,000원 할인
-경로(만 65세 이상) 5,000원 할인
-예술의전당 유료 전시/공연 티켓 소지자(현장 예매 시 1인 1매 적용) 5,000원 할인
·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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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M 글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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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사진전시 #사진전 #예술의전당전시 #예술의전당 #안나&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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