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최초로 나왔던 그 순간을 떠올려보자. 그림보다 더 정확한 결과를 더 편하게 대상에게 넘기기 위해 탄생했다. 그렇게 사진이 탄생한 이후에 그림은 거의 대부분 달라졌다.
쉽게 말해 '사진으로는 이렇게 못하지?' 같은 그림이랄까. 그렇다면 과연 그런 사진은 존재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사진은 꾸준히, 계속그림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중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보케'다. 초점 맞은 곳의 앞, 뒤가 단순하게 흐려지는 것뿐 아니라, 동그란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 그리고 하나 더 있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고 포기하지 말자
누구나 어렸던 시절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중 꾸준히 그림을 그릴 확률은 매우 낮다.
그림을 그리기 않겠다는 마음으로 대학시절까지 보낸 후,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나이를 먹더라도 그림을 가끔 떠오르기 마련.
여행을 떠났을 때 친구나 아름다운 곳을 폰으로 찍다가도 '그림으로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카메라로 사진 찍기를 시작해보자.
만약 '보케만으로는 아름다움이 모자라다'는 생각이 든다면, '남들이 남기지 않는 사진이 필요하다'면 반영 사진에 도전해보자.
보통 일반적으로 실제 대상과 반영을 반반 상대로 찍곤 한다.
보통 반영 사진을 처음 찍어볼 땐 실제와 반영을 반반 정도로 담은 사진을 찍곤 한다. 마치 그래야 어떤 것이 실제 사진에 남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
그러나 만약, 정확한 결과가 필요한 게 아니라면, 전체적으로 마치 그림 같은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면 사진의 전체를 반영으로 찍어보자.
찍히는 대상이 정확한 모습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더더욱.
도림천에서 찍은 반영사진. 천천히 흐르는 강물위에 보이는 반영을 전체적으로 찍어서 돌렸다. ZEISS Batis 2.8/135 + SONY a9
만약 즐겨 찾아가는 곳에 매우 천천히 강물이 흐르고 있다면 물 위에 떠있는 반영을 지켜보자.
흐르는 강물 때문에 선명함이 모자라거나 울렁거리는 모습이 보인다고 포기하지 말자. 오히려 그런 모습을 도전하는 마음으로 찍어보자.
그림 그릴 때 손을 자주 쓰게 되는 것처럼
Helios 92로 찍은 반영사진
경험을 통해 알게 되겠지만 반영 사진은 AF로 촬영하기 힘들다. AF로 찍으면 실제 물 그 자체 위를 초점으로 맞춰 버리기 때문이다.
AF가 초점 맞출 대상은 물 바로 위. 따라서 MF로 초점을 맞추도록 노력하자. 특히 대상을 정확하게 반영사진을 찍어야 한다면 MF일 때 안심할 수 있다.
모두 올드 렌즈로 찍은 반영사진.
앞서 올렸던 올드 렌즈에 대한 이야기에 빠졌는데, 그 렌즈들은 MF로 찍어야 하기에 반영 사진과 잘 어울린다.
반영 사진 찍을 때엔 최신 AF보다 MF가 더 안심하게 된다. 혹시, 사람을 찍는 게 아니라면 지루한 사진이 나온다고 생각하시는가?
그렇다면 반영 사진으로 찍어보시길 바란다.
특히 촬영한 반영 사진을 180도 돌렸을 때 그 새로운 느낌이 찾아올 수 있다.
연줄기들. 실제 촬영한 사진을 돌렸다. 반영과 실제가 함께 들어있는 사진. ZEISS Batis 2.8/135 + SONY a9
선을 쭉쭉 선명하게 잘 그린 그림이 그립다면 주변까지 선명하게 찍히는 렌즈가 잘 어울린다.
최대 개방 시 극주변까지도 선명한 결과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직접 그린 그림만 답은 아니다. 지금 이 사진들은 거의 흐리지 않는 물 덕분에 AF로 찍은 반영 사진이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한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180도 돌린 반영 사진이다.
모여있는 넓은 물을 만나기 힘들다면
비 내렸던 날 비 멈춘 직후에 찍은 사진. 해진 직후였다. SIGMA 35mm F1.2 DG DN I Art + SONY a9
일반적으로 물이 모여 있는 곳에서만 반영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야외에서 반영 사진 촬영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답이 없진 않다.
비 내린 직후를 생각해보자. 걸어 다니는 길 아래에 비 내린 물들이 모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그 물이 작은 덩어리로 모여 있을 뿐만 아니라 어딘가로 흘러가는 움직이는 모습도 아니다.
따라서 그런 물 위에 비친 것들은 반영 사진으로 찍기 좋다.
비 내린 직후, 집 근처에서 찍은 사진.
사실 비 내리는 순간에는 비가 카메라나 렌즈에 들어가는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야외로 나가서 사진 찍기 힘들다. 그러나 비 내린 직후에는 멈추지 말자.
내렸던 비가 조금이라도 모여 있다면 그 물 위에 퍼지고 있는 반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 순간을 찍은 사진은 흔한 결과가 아니다.
비가 얼마나 와줬는지, 비 멈췄을 때 하늘이 맑아졌는지 흐렸는지 등 그 순간은 항상 다르다. 그리고 그 빗물 덕분에 찍은 반영 사진 또한 매번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비 내리는 날엔 우울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래 맘껏 내리렴. 그래야 그림 같은 사진 찍기 좋지'라고 생각하며 가슴 뛰시길.
소나기 내렸던 덕분에 찍었던 사진. ZEISS Batis 2/40 + SONY a9
겨울의 얼음도 포기하지 말자
반영사진을 돌렸다. 얼음 위에 있던 작은 돌과 얼음이 하늘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 ZEISS Batis 2.8/135
일반적으로 한겨울에 한강에서 반영 사진을 찍기는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한강이 흘러가는 모습이 되면 그 물 위에 반영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겨울에는 한강 위에 얼음이 모여 반영 사진을 찍기 나쁘지 않다.
물론 일반적인 사진으로 기대할 수 있는 선명한 사진은 거의 불가능하다. 얼음 덕분에 물이 흐르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투명한 듯한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어떤 구름까지 사진에 들어갔다. 촬영 시 가까운 곳에 보케가 나타났다. ZEISS Batis 2.8/135
그렇다면 오히려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얼음 위의 반영은 그림과도 다르고 사진과도 똑같지 않은, 또 다른 사진이기 때문이다.
보통 한겨울에는 쌓인 눈 외에는 찍을 만한 게 별로 없다. 더불어 매우 추울 때엔 밖에서 사진 찍기 힘들기도 하다.
그러나 특별한 반영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멈추지 마시라. 다시 겨울이 오기까지는 1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겨울, 도림천에서 촬영한 사진. 얼음 일부는 조금씩 녹아 흐르고 있었다. ZEISS Batis 2.8/135
그림 같은, 그림과 다른 사진을 위해
홍유릉에서 촬영한 사진. ZEISS Batis 2.8/135
그대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대가 꿈꾸는 사진은 무엇인가? 그대가 사진 찍기를 즐긴다면,
남들과 다른 사진 찍기를 원한다면 우선은 훌륭하다고 알려진 유명한 사진들을 보고 배우시길 바란다.
그리고 하나 더. 비록 직접 그리지 못하더라도 훌륭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저렇게 찍는 건 어떨까 생각해보자.
물론 사진은 그림과 다르다. 더불어 자신의 사진은 타인의 사진과 다르다.
선유도 공원에서 찍은 사진. 각각 다른 날 찍은 사진. SIGMA 45mm F2.8
어쩌면, 이번에 올린 사진들은 일반적인 사진들의 중심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일반적인 것들로부터 깨어나 또 다른 중심으로 태어난다면,
그 또 다른 중심이 일종의 예술들과 함께가 된다면 기대할만하지 않을까? 사진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화천연꽃마을에서 찍은 사진. 180도 돌렸다. ZEISS LOXIA 2.8/21
더불어 개인적으로 인공적인 상황을 만들어 찍는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사진과 카메라는 누구나 쉽게 찍으라는 의미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일부러 특별한 듯 만든 인공적인 상황을 싫어한다.
타인과 다른 사진을 찍고 싶은가? 그러기 위해 특별히 아름다운 사람을 특이하게 찍는 게 답이라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다른 방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현실과 하나일, 그러나 현실을 벗어난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영 사진처럼.
EastRain 2021.08.17
* 사진 중 일부 (SIGMA 렌즈) 외에는 모두 본인 소유 렌즈와 카메라로 직접 촬영한 결과입니다.
* 이 모든 글/사진의 저작권은 Eastrain 작가님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