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카메라로 돌아간다는 것.. SIGMA SD Quattro H
과거로의 여행, 시그마 sd Quattro H와 흑백으로 바라보기
세기프렌즈 1기 '절대미남자' 고일용
꼬꼬마 시절 장롱 속 이불 틈 깊숙한 곳, 어린 내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그곳에
아버지의 보물 1호인 필름 카메라가 숨겨져있었다.
차갑고 묵직한 몸체에 빼곡히 들어찬 버튼과 오묘하게 빛나는 보랏빛 렌즈..
어린 시설 내 눈에 비친 아버지의 카메라는 UFO나 007의 멋진 자동차보다도 빛나는 존재였다.
우리 집은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부모님께서 온 가족이 함께하는 봄나들이는 절대 빠트리지 않으셨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아버지의 손에 들려있던 그 카메라는 우리 가족의 추억 대부분을 사진으로 담아내 주었다.
10살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회사 야유회를 따라 나선 적이 있었다.
(일을 쉬실 수 없었던 어머니를 대신해 가족 대표로 내가 참석했다.)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던 버스 안, 아버지와 낯선 어른들 틈에 앉아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과
버스에 잔뜩 실린 양념 통닭 냄새는 내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점점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게 정말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께서 난생처음으로 그 멋진 카메라를 내게 허락하셨던 것이다.
물론 너무도 부드럽고 매끈한 셔터 버튼은 눌러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영롱한 뷰 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은 이미 충분히 터질 듯 벅차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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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에 대한 애착은 꼬꼬마 시절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그마 SD 콰트로 H
"아버지의 카메라를 다시 떠오르게 한 녀석.."
오늘 포스팅에 사용된 사진은 모두 시그마의 dp Quattro H로 촬영했다.
시그마 프렌즈 활동을 하면서 첫 번째 미션 주제로 빌려온 녀석인데, 예전부터 포베온 센서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던 차에
이 녀석을 선택하게 되었다. 카메라를 건네받는 자리에서 의미심장한 표정과 함께
"어려운 카메라를 선택하셨네요. 야생마 같은 녀석입니다." 라는 담당자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야생마란 표현을 쓸 정도로 까다로운 카메라라니...
하지만 걱정스러운 마음 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다. 그간 너무도 뻔한 카메라들만 사용해 온 터라 이런
변화를 꽤 오랫동안 기다렸기 때문이다. (설마 뒷발로 날 걷어차지는 않겠지...)
시그마에서 제시한 구체적인 미션은 SD 콰트로의 흑백 사진이었다.
난생처음 만난 포베온 센서도 모자라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시도해 본 적이 없는 흑백사진이라니...
하지만 부담은 느껴지지 않았다. 흑백사진은 아는 바가 없으니 부담도 있을 리 없다.
그저 내 '흑백 사진의 시작'을 이번 포스팅에 담아 남기고 싶었다.
그 시작이 평소 호기심의 대상이던 포베온과 함께라 의미가 더 컸다.
세기P&C의 조언대로 일단 무작정 찍어 보기로 했다.
카메라의 성능은 무시하고 일단 결과물에서 모든 것을 시작하고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두에도 밝혔듯 흑백 사진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컬러에 길든 습관을 버리기가 쉽지가 않았다. 사실 흑백사진을 위해 뭘 버려야 하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렇더라도 인터넷을 뒤져 뻔한 상식을 바탕으로 시작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흑백사진에 대한 나만의 길을 만들고 싶었다.
잡히는 대로 찍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본듯한 결과가 나오는가 하면 터무니 없는 사진도 많았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흑백 사진의 성향을 느껴보려고 노력했다.
뜻에 비해 훌륭한 결과물을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나름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엔 빛의 방향을 가늠할때 시선의 흐름이 광원에서 시작됐다면, 흑백 사진을 찍을 땐 그림자로 부터
시작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였고, 화이트밸런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 말할 수 없이 좋았다.
하나, 둘 SD 콰트로의 컷 수가 늘어가면서 흑백 사진은 그림자로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초딩 시절 미술 시간에 화선지에 그리던 어설픈 수묵화가 떠올랐다.
(어설픈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구나...)
화려한 풍경이 컬러 사진에 잘 어울린다면 흑백 사진은 역시 담백한 풍경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편이 찍기 편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만나고 싶다
"SD 콰트로를 길들인 그 사람"
아웃포커스는 접어두고 흑과 백으로 여백을 채워 보기로 했다. 그래서 단조로운 풍경을 찾아 사진에 담아 보기로 했다.
하지만 일상에는 생각만큼 여백이 많은 풍경이 흔치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하니 바라보는 것도 모두 복잡해 보이는 모양이다.
여느 때와 달리 카메라에 어울리는 풍경을 찾아다녀야 했다. 눈앞의 풍경을 내 식대로 사진에 담기는커녕 카메라가
원하는 대로 사진을 찍는 기분이 들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것이란 이런 걸 두고 말한 것이겠지?
SD 콰트로를 경험하면서 갖게 된 가장 큰 희망사항은 '진짜 이 녀석을 조련한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였다.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이 하는 SD 콰트로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그의 작품이 궁금했다. 처음 SD 콰트로를 손에
쥐었을 때 이런 식의 전개가 이뤄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SD 콰트로를 만나고 난생처음 흑백 사진에 도전한 지난 4주는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짧은 기간 안에 대단한 성과를 낼 수 없을 거란 생각을 갖고 시작했기 때문에 부담 없이 모든 과정을 즐겼다.
아버지의 카메라를 처음 만져본 그 당시의 울림이 영원히 가슴속에 남아 있기를.
시그마 SD 콰트로 H의 진정한 멋을 제대로 이끌어 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남지만
세기P&C라는 친구를 사귀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기에 그들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세기P&C의 말처럼 SD 콰트로는 역시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그리고 시간을 투자할수록 더 멋진 결과물을 뽑아내 줄 것이 분명하다.
포베온 센서를 앞으로도 꾸준히 알아가고 싶다. 그리고 필름 카메라의
감성으로 또박또박 찍어나가는 포베온의 감성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흑백 사진에 대한 이런 근사한 시작점을 갖게 해준 새 친구 세기P&C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SAEKI FRIENDS 1기
고일용(절대미남자) I 트래블로거
1차 정기미션 "흑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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