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필름카메라와 함께한 스쿠터 여행
ILFORD 일회용 카메라와 함께한 서울-부산
세기프렌즈 3기 '호타' 신재호
ILFORD 흑백 필름카메라와 함께한
서울-부산스쿠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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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부산에 휴식 차 다녀왔습니다.
부산에 계신 친한 형님이 안 타시는 스쿠터를 받으러 가면서 겸사겸사 여행도 좀 하다 왔네요.
스쿠터를 부산에서 서울로 가져오려고 찾아보니 용달비가 25만원 정도라, 차라리 그 돈을 수리비에 쓰자는 생각으로 직접 타고 오게 됐습니다.
따로 짐을 싣기가 쉽지 않아서 카메라 장비도 최소화 했습니다.
이 때 빛을 발한 게 바로 ILFORD 흑백 필름카메라입니다.
일회용 자동 카메라다 보니 가볍고, 부피도 작아서 가방에 넣기 딱이더군요. 더불어 요즘 유행하는 흑백 감성도 뙇!
케이스 뒷면에는 사용법에 대한 소개가 나와있습니다.
그림이 직관적이기도 하고, 어렸을 때 학교 숙제로 자동 필름카메라를 몇 번 다뤄본지라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냥 드륵드륵 돌리고 찰칵 찍으면 됩니다. 플래쉬 필요할 때만 꾹 눌러주고요.
부산 가는 기차 안 / Sony A7S
모양은 너무 예쁩니다. 일포드 로고부터가 예쁘긴 합니다.
일포드가 한국에서는 엄청 유명한 편은 아닌 것 같지만, 해외에서는 흑백 필름과 인화지로 굉장히 유명한 회사입니다.
유명 유튜버들 콘텐츠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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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밤이라 일단 자고 내일을 기약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사진 한 장 없습니다.)
| 정신없던 1일차, 금요일의 모습
부산 동방오거리에 위치한 동방오토바이 / ILFORD XP2 400
제가 목요일 밤에 부산에 넘어갔고, 일요일에 서울로 출발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금요일에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해서 너무 바빴습니다.
형님이 출근하시기 전에 스쿠터를 받아서 센터로 가져가 점검을 받고, 이걸 타고 올라갈 수 있을지 확인 받고, 점검하는 동안 이륜차 보험도 가입하고 번호판도 등록해야 했거든요.
별명은 산남이 입니다
다행히 동방 오토바이 사장님께서 이 정도면 거뜬하다고 해주셨네요. 사장님 아들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녀서 얼굴 보러 가끔씩 오토바이로 서울에 가셨답니다.
중간 중간에 쉬어주면서 가면 무리 없다며, 아무 것도 교체하지 말고 서울 가서 한 두달 더 타다가 교체하라고 하셨네요.
오토바이를 즐겨 타시는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이렇게 양심적인 센터는 정말 찾기가 어렵습니다.
보통 안 고쳐도 될 것까지 고치게 시키고 하시는데 동방오토바이는 정말 딱 필요한 부분만 고치게 하십니다.
사장님께서 센터 시설이 낡았고, 장비도 새거는 아니고, 리프트도 대한민국에 몇 개 안 남은 1세대 리프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저렴하게 할 수 있다고, 직원 없이 혼자 하는 이유도 소비자들에게 저렴하게 제공하고 싶어서라고 하셨네요.
더불어 사장님께서는 자신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단 한 번도 폭주족 오토바이를 받은 적이 없는 거라고 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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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 정비 후, 사장님이랑 함께점심으로 돼지국밥을 먹고, 오랜만에 잠에서 깨어난 스쿠터를 달래주기 위해 부산 황령산 벚꽃길로 출발했습니다.
흑백필름으로 담은 벚꽃 나무
3월 말인데도부산은 벌써 만개했더군요.
서울은 아직도 추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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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가 요즘 카메라들처럼 엄청 선명하지 않아서 더욱 필름의 빈티지함을 잘 살려내는 것 같습니다.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경치도 좋고. 다만 언덕이 거의 스키장 중급 코스 수준으로 경사가 심해서 서울 가기도 전에 스쿠터가 퍼질까봐 걱정이 됐습니다. ㅎㅎ
황령산에서 담은 광안대교
황령산에서 담은 광안대교입니다.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나오는군요.
필름 카메라의 매력은 역시 시간이 흐른 뒤에 확인하는 맛인 것 같습니다.
특히 커플이 여행 가서 필카로 찍고 몇 개월 뒤에 인화해서 보면 더욱 좋은 추억이 되겠네요.
(헤어진 커플이라면 아니겠지만요)
일단 이 날은 이렇게 가볍게 라이딩 후짜장면을 먹고 숙소에 돌아와 뻗었습니다.
| 2일차: 부산 스쿠터 투어
벚꽃이 만개한 신선대
2일차에는 형님이 스쿠터를 한 대 빌려서 스쿠터 2대로 부산 바닷가 주변을 쭉 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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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명부, 나무가 암부라 대비가 더욱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벚꽃 놀이 갈 때도 필카 들고 가야겠습니다.
이기대에서 바라본 오륙도 스카이워크 (좌) / 광안리 (우)
확실히 일포드 카메라만의 빈티지한 느낌이 따로 있습니다.
<쉰들러 리스트>를 제작하면서 관객들이 언제 찍은 영화인지 모르게 하기 위해 흑백 필름과 여러 장치를 사용했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말처럼,
일포드 흑백 필름은 시간을 숨겨주는 것 같습니다.
간판과 차량을 보지 않는 이상 시대를 구분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광인리와 프레임 속 광안대교
어떤 조명도 없이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이런 룩이 나옵니다.
저처럼 보통손에게는 아주 유용한 카메라네요.
해동용궁사 가는 길 (좌) / 달맞이 고개 내려오는 길 (우)
오후 1시부터 8시까지스쿠터로 쭈욱 부산 해변가를 돌았습니다.
기장에 요즘 핫플 카페가 많다고 해서 가려고 했으나 렌트한 스쿠터 반납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돌아왔습니다.
갑자기 밤 바람이 추워져서 둘 다 집에 들어와서 나갈 생각은 못하고 집에서 고기 구워먹고 씯고 곯아 떨어졌습니다.
| 3일차: 서울로 출발
오전 7시에 일어나서 출발하려고 했는데 일어나니 10시였습니다.
서울 강남까지 네비게이션 마다 예상 시간이 다른데 10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판단했더니 맘이 급해져서 사진도 제대로 못 찍고 그냥 허겁지겁 출발했네요.
밀양, 슬레이트 집. 찍고나니 아저씨가 왜 찍냐고 물어보셨다.
근데 또 금새 밀양에 도착하긴 했습니다.
부산 시내만 빠져나가니 차가 별로 없어서 금방 금방 가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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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포드 사진을 인화해놓고 보니 노이즈가 조금 끼긴 하지만 굉장히 선명하면서도 거칠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옛날 할아버지댁이 밀양이라, 길은 낯설었지만 마음만큼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밀양 쪽 코스의 단점은 산이 너무 많아서 스쿠터도 힘들고 운전자도 너무 힘이 듭니다.
대신에 엄청난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점!
영화 <똥개>에도 나왔던 용평터널
사실 밀양에서도 산 길을 안 거치고 빠른 길로 쭉 갈 수도 있었는데, 온 김에 용평 터널이 보고 싶어서 와봤습니다.
용평 터널에서는 리코 세타로 360 영상도 찍었기 때문에 조만간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서이추 환영!)
시골 마을 풍경.
이 때까지만 해도 5시간 뒤 제게 닥칠 일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 다섯 시간 뒤
이상함을 느끼고 스쿠터의 마지막 사진이 될까 두려워 찍은 사진
밀양을 넘고 청도를 넘고 대구를 넘고 구미를 넘어 상주를 넘던 중, 갑자기 발견하게 된 빨간색 등.
엔진 체크 버튼에 빨간 버튼이 들어왔습니다.
이 부분에 불이 들어오면 재빨리 센터에 가야하는데 오늘은 일요일.
어찌해야하나 하다가 우선 조금 더 가기로 합니다.
그렇게 가다가 보니 엔진에서 너무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시내로 바로 빠집니다.
읍내에 도착하고 나서 5분도 안돼서 스쿠터가 멈춥니다.
그리고 시동을 걸어도 다시 켜지지 않더군요.
다행히도 문경 점촌역 부근이어서 오토바이 센터가 많았습니다. 이리저리 전화를 돌렸더니 다행히 한 분께서 주말 농장 일 마치는 대로 와주시기로 합니다.
사장님이 도착하시니 이미 밤.
내일 아침에 봐주겠다며 스쿠터는 싣고 가버리셨고,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가버렸습니다.
나의 첫 일포드 카메라, 아디오스
어이 없게도 인화하고 보니 문경으로 빠지기 전에 잠깐 세우고 스쿠터에 무슨 문제가 있나 확인하다가
옆에 경치가 좋아 찍었던 사진이 필름 마지막 컷이었습니다.
(아아 이 정도면 운명)
| 4일차 : 문경에서 서울로
점촌역 근처
이른 아침부터 벌떡 일어나서 센터로 향했습니다.
밤에 누웠는데 잠이 안와서 생각을 해보니 센터에서 공임비가 많이 나올 것 같으면 차라리 용달로 보내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아저씨께서 엔진 오일 문제라고 오일을 갈아주셨더니 시동이 잘 걸리더군요.
그리고 이 때 일포드 카메라로 찍으려는데 제가 사진을 다 찍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한 번 얼마나 생각없이 찍었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네요.
언제 만들어졌는지 궁금한 오토바이 포스터.
원래 문경새재도 구경하고 천천히 충주댐도 구경하면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춥기도 너무 춥고,
또 고장날까봐 두렵기도 해서 그냥 거의 쉬지 않고 쭉 달렸습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 영상을 체크해보니 쓸만한 게 거의 없더군요...쥬륵
최대한 필름 느낌으로 보정해보려고 했지만 실패
어쨌든 몸 건강히 스쿠터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평생의 버킷리스트였는데, 하나 해냈네요.
아쉬운 점은 일포드 카메라로 여행 시작부터 끝까지 담고 싶었는데, 롤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마지막을 못 담았다는 것입니다.
역시 사진은 계산을 하고 더 신중히 찍어야 하나 봅니다.
조만간 스쿠터로 1박 2일 여행을 갈 때는 시작부터 끝까지 쭉 담도록 컷 수를 잘 관리를 해야겠습니다.
*모든 흑백 사진은 ILFORD XP2 400로 촬영되었습니다
SAEKI FRIENDS 3기
신재호 (호타) I 영상 콘텐츠 크리에이터
리뷰편 "필름카메라와 함께한 스쿠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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