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다.
by the RICOH GR 2
세기프렌즈 1기 '세지쓰' 박세진
Hello! I write and I take photos! 세지쓰
이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사진를 좋아하는 사람같아 보여서 좋다. 날로날로 스펙 업데이트에 열을 올리는 다른 카메라들이 사진을 찍기 위한 뛰어난 도구임을 표방할 때 리코 gr2는 작가의 붓, 누군가의 다이어리이길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장비의 영역에 있지않고 취향의 영역에 있다는 것이 이 오래된(2015년 출시) 카메라를 여전히 현역으로 뛸 수 있게 하는 것 아닐까? 더군다나 6년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주머니에 쏙 들어가고 진득한 색감과 탈똑딱이급 화질은 여전하다.
무려 6년전 카메라를 최신 카메라와 비교할 수도 없고 비교하지 않아도 GR은 GR만의 사진을 찍어내니까 AF가 어떻고 화소가 어떻고하는 얘기는 다루지 않을 생각이다.
리코 GR2로 담은 해오름달의 어느 꽃같은 날의 기록
공들여 아껴두었던 스팟이었다. 아낀 이유는 별 다른 건 아니고 카메라 충전케이블이 없어서였다. 전용케이블인 탓에 여분으로 갖고 있질 않았고 제주도에서 갑자기 살 수도 없어서 필름카메라다 생각하고 남은 배터리를 아껴쓰기로 했다. 흐린 날씨가 계속 된 탓에 벼르고 벼르다가 오전에 날씨가 개일 것 같아 일찍 길을 나섰다. 제주는 이제 제법 따뜻해져서 대충 파타고니아 조끼를 걸쳐입고 주머니에 리코 GR2를 찔러넣었다.
난 이 카메라를 카메라 가방에 넣어본 적이 없다. 18.3mm f2.8 고정화각 렌즈라 줌을 이리저리 당길 필요도 없고, 당길수도 없다. 어느정도 화각에 익숙해지면 이 자리에서 이정도로 찍히겠구나라는 걸 감각적으로 알게 된다. 35mm기준으로 환산화각 28mm정도니 너무 광각이다 싶으면 그저 몇걸음 더 다가가면 그만이고, 초점거리가 짧아 매크로온 모드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도 근접촬영이 가능하다. 당겨찍고 싶을 땐 내가 다가가면 되는 것이다. 어떤 순간을 찍어야 한다면 리코 GR2를 주머니에서 꺼내기만 하면 된다.
어딘가에서 봤던 사진을 토대로 떠듬떠듬 찾아 걷다 숲길 초입, 마치 거인의 정원같은 비현실적인 풍경에 숨을 크게 들이키고 말았다. 고개를 하늘로 꺽어 들어야 할 만큼 키 큰 나무가 줄지어 서있고, 둘이서 나란히 서서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소실점처럼 이어진다. 나는 왜 이때 내 모습을 찍어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얼마나 높은 나무인지 알 수 있었을텐데. 아마 그저 놀라서 카메라에 담기 바빴겠지.
꽃잎을 활짝 열어젖힌 채 우릴 반기던 첫번째 동백나무가 나타났다.
토종동백보다 개화가 일러 이맘때쯤 절정기를 보여주는 애기동백이었다.
꽃송이째 떨어지는 토종동백과 달리 꽃잎이 한장 한장 떨어져 나무 그림자를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여행오면 제주시에서 서귀포시까지야 같은 생활권마냥 하루에도 오가는 곳이지만, 여기에 살다보니 서귀포까지 가려면 나름 마음을 먹어야 한다. 평소같으면 곤히 자고 있을 시간에 부스스 잠에서 깨어날 때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는데 기분 좋은 설레임에 왕복 1km를 걷는 내내 데이트하는 기분이었다.
꽃반지도 끼어보고,
우리끼리 소소하게 인증사진도 남겨보고,
새벽까지 비가 온 탓에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지만 촉촉한 숲내음에 이것마저도 좋았다.
난대, 온대, 아열대의 기후를 모두 갖고 있는 제주의 숲길은 어디서 어떤 장면을 보게 될 지 알 수 없어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을 가졌다. 그래서 더 몰입하게 된달까.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를 들쳐메고 다니다간 제풀에 지쳐 이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줌렌즈였다면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줌을 당겨 사물을 찍었겠지만 리코 GR2를 들고 있으면 다가가게 된다. 그래서 더 진득하게 기억하게 된다. 여행을 더 여행답게 만든다는 면에서 이만한 카메라도 없을테다.
Bokeh
빼곡한 숲 너머로 새어든 빛으로 예쁜 보케가 만들어졌다. 포지티브필름은 필터도 후보정도 필요없는 색감을 만들어낸다. 핸드폰과는 비교도 안되는 화질에 GR특유의 감성, 컴팩트카메라가 핸드폰에 밀리면서 최근 하이엔드카메라가 대세로 등장했지만 리코 GR2의 감성과 화질은 여느 최신기종보다 높은 만족감을 준다. 100만원을 웃도는 출고가에 컴팩트한 카메라를 찾던 사람들에게는 컴팩트하지 않은 가격이 장벽이었다면, 살포시 중고 구입을 추천드린다. 사진에 한정한다면 30만원 중반대에 최상급의 하이엔드카메라에 필적하는 말도 안되는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을테다. 팬층이 두터운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숲길이 끝나고 왔던 길을 되짚어 오다가 만난 유일한 사람1, 반려견1
별 얘기를 나누진 않았는데도 우린 다 행복했다는 걸 서로 알고 있었다.
꽃이 다 져버리기 전에 다시 한번 올 수 있을까?
아쉬운 마음에 돌아서서 한 컷 더 카메라에 담았다.
Cafe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딱 출출한 시간이라 카페에 들렀다.
초록이가 한가득이라 숲 속 피크닉같은 공간,
때묻은 빈티지 가구들이 포지티브필름에 담기니 붉은 귀티를 다시금 뽐내는 것 같았다.
특히 음식사진에 마법을 부린다. 주머니에서 꺼내 가볍게 툭툭 찍으면 되니 괜한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일도 없고, 라떼의 농밀한 질감과 오븐의 굽기 정도마저 눈으로 보일 듯 담아내져 리코 GR2의 매크로 기능에 다시금 놀라버렸다. 초점이 흐려지는 아웃포커싱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음식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Optical angle
해변도로를 드라이브하며 찍은 월정리 풍경,
만병이 치료된다는 김녕 청굴물
김녕 성세기해변,
왜곡없이 시원하게 담기는 광각 사진은 우리의 일상을 지나치는 수많은 풍경을 담아낸다.
아이를 떼어놓고 바다로 가야했던 해녀의 삶
좁고 구불구불 이어져 걷다보면 어디로 이어져있는지 모른 채 걷게 되는 진짜 올레길이 김녕마을에는 아직도 존재한다. 자동차도 드나들지 못하는 협소한 골목길을 가벼운 카메라 하나만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걷다보면 제주에서의 삶이 느껴지는 듯 했다. 무거운 카메라가 어깨를 짓누르고 발바닥에 불이 나서야 보일리 없는 풍경이 아닐까?
언제쯤 마음 편히 여행할 날이 돌아올 지 모르겠지만 사진으로나마 제주로 찾아오셨길 바랍니다.
리뷰에 사용된 사진은 포티지브필름 모드 / 리코 GR2로 촬영하였으며, 리코 GR2를 촬영한 사진은 A7R3 + 시그마 65mm F2.0 DG DN입니다. 리코 GR2를 무료로 대여받았으며 해당 리뷰는 금전적인 대가가 없음을 밝힙니다.
SAEKI FRIENDS 1기
박세진 (세지쓰) I 펫트래블러, 트래블로거
2차 정기미션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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