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
개츠비와 뭉크에 관한 나의 이야기
세기프렌즈 4기 '헤이스' 박성혜
The Great Gatsby & Edvard Munch
'The Contrast of Light and Dark'
Sigma Art 20mm F1.4 DG HSM
Sigma Art 24-70mm F2.8 DG DN
Sigma Art 85mm F1.4 DG HSM
본 포스팅에 게시된 사진들은 상기 렌즈로 촬영하였습니다.
개츠비를 싫어하는 소설광
제일 좋아하는 화가는 뭉크, 가장 싫어하는 소설 속 주인공은 개츠비이다.
개츠비를 읽자마자 개츠비가 싫었고, 뭉크의 그림을 보자마자 뭉크가 좋았다.
몇 년 전, 한국에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개봉했을 때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나 역시 보았고, 재미있었고, 영화는 흥행하여 많은 패러디를 낳았다. 나는 그 영화에 관해 진지한 견해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개츠비를 진심으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20mm F1.4 DG HSM | F16.0 1/320 iso 800
개츠비는 나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 만약 우리가 같은 세상에서 만났다면 좋은 친구이거나 동업자 혹은 철천지원수가 되었을 것이다.
24-70mm F2.8 DG DN | F11.0 1/200 iso800
세상은 넓을수록 좋다. 도전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다. 나는 강해지고 싶다, 모든 방면에서.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 하얗게 타오르는 느낌은 의식을 먼 곳으로 데려다준다.
20mm F1.4 DG HSM | F9.0 1/80 iso160
20mm F1.4 DG HSM | F11.0 1/80 iso640 (좌) / F11.0 1/320 iso800 (우)
개츠비의 맹목적인 행동을 애써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 스스로도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행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개츠비를 싫어하는 이유는
삶에 대한 맹목적인 열의와는 반대로 기저에 깔린 두려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성취와 비전으로 잘 덮어놓은 연약한 두려움을 볼 때마다 개츠비는 비겁하고 재미없는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다.
그 모습이 결정적으로 나와 비슷해서, 개츠비의 그림자만 보아도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소름끼치도록 싫다.
개츠비와 관련된 글을 읽어야 하는 상황이 올 때마다 강하게 부정한다. 내 생각은 정말 달라. 난 절대 이해 못 해. 난 아니야.
빛과 어둠
24-70mm F2.8 DG DN | Art 019 F7.1 1/800 iso100
24-70mm F2.8 DG DN | Art 019 F4.5 1/1250 iso100
누구나 빛을 닮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둠만큼 편안한 것도 없다.
24-70mm F2.8 DG DN | Art 019 F2.8 1/2000 iso200
24-70mm F2.8 DG DN | Art 019 F208 1/5000 iso800
어둠은 사람들의 표정을 숨겨주는 두꺼운 이불처럼 생겼다.
구름이 물방울을 매달고 한없이 땅과 가까워질 때 나는 비로소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낀다.
어둠이 내려오면 사람들은 저마다 쓰고 있던 페르소나라는 마스크를 하나 둘 벗기 시작한다.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일몰이 찾아오거나 먹구름이 내려앉는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 조금 더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다.
Man is least himself when he talks in his own person
Give him a mask, and he will tell you the truth
Oscar Wilde
24-70mm F2.8 DG DN | Art 019 F22.0 1/500 iso800 (좌) / F2.8 1/5000 iso800 (우)
어둠과 빛의 대비가 만들어 낸 선명한 일몰은 강한 인상을 준다.
소실점에서 타오르는 빛을 볼 때마다 반사적으로 개츠비가 좋아하던 그린라이트가 떠오른다.
실연당한 사람처럼 부두에 서서 손을 뻗는다거나 하는 한심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언젠가 다른 세상에서 만날 수 있다면, 정확히 이런 장면 속에 갇혀 일몰을 보며 밤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개와 늑대의 시간
24-70mm F2.8 DG DN | Art 019 F14.0 1/320 iso100
땅거미, 혹은 황혼이라는 단어를 쓸데없이 길게 늘여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쓰면 모든 것이 약간 그럴싸해진다.
프랑스에서 온 'L'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는 이 표현은 밤의 짙은 푸른색과 낮의 붉은색이 만나는 하늘을 배경으로 언덕 너머에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키우는 개인지 나를 공격할 수 있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장면을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살아있는 생명이 움직이는 낮과 죽은 자들의 시간인 밤 사이 경계가 허물어지는 때를 황혼이라 여겨 여러 설화가 전해진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도 황혼이 찾아오는 순간 등장인물 간의 갈등이 해소된다.
나는 두 가지 이야기 모두 몹시 좋아한다.
24-70mm F2.8 DG DN | Art 019 F22.0 1/40 iso100 (좌) / F2.8 1/320 iso640 (우)
나를 버릴 수 있는 시간. 내가 나로서 존재하지 않아도 좋은 시간.
24-70mm F2.8 DG DN | Art 019 F5.6 1/100 iso1600
24-70mm F2.8 DG DN | Art 019 F3.2 1/125 iso1600
어둠 속의 빛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는 절규라는 유명한 작품을 남기긴 했는데, 나는 그의 다른 그림들을 좋아한다.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어머니가 결핵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십 년 뒤 본인을 어머니처럼 돌봐주던 누나가 같은 병으로 죽었다. 남동생도 죽었고, 아버지는 군의관이었는데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여 광신도가 되었다. 평생 동안의 연애에 모두 실패했고, 결혼하지 못했다. 의외로 건강하여 80살 가까이 살았고, 덕분에 평생 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그림을 그린 뒤 모두 조국에 기증하였다.
85mm F1.4 DG HSM | Art 018 F1.4 1/320 iso800
85mm F1.4 DG HSM | Art 018 F1.4 1/320 iso800
그의 세계에 죽음과 어둠이 따라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래서 그 사람이 절규 같은 징그러운 그림이나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두울수록 빛은 밝게 보인다.
got to have opposites dark and light, light and dark in painting.
It's like in life.
got to have a little sadness once in a while so you know when the good times come.
I'm waiting on the good times now.
Bob Ross, Joy of Painting, 아내와 사별한 뒤 촬영한 에피소드에서
The Sun, Edvard Munch
뭉크가 그린 이 그림을 정말 좋아한다. 눈이 멀어버릴 듯 선연한 빛에 죽고 싶을 만큼, 혹은 죽었다면 정말 후회했겠다 싶을 만큼 쏟아지는 큰 격정을 좋아한다. 언젠가 개츠비를 만난다면 뭉크의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 당신과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빛과 어둠을 넘나들었던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고.
어둠을 내 것으로 만들고 난 뒤 보이기 시작하는 삶의 의미를 사랑한다.
24-70mm F2.8 DG DN | Art 019 F18.0 1/320 iso100
Sony FE 24-105mm F4 G OSS F16.0 1/125 iso100
85mm F1.4 DG HSM | Art 018 F14.0 1/60 iso250
20mm F1.4 DG HSM | Art 018 F1.6 20.0 iso100
마지막 사진 자꾸 재탕해서 미안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안녕!
SAEKI FRIENDS 4기
박성혜(헤이스) I 프리랜서
4차 정기미션 "자유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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