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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창
PEOPLE인터뷰
[사진가와의 만남] 구본창 작가가 담아낸 무생물의 숨결
202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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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와의 대화에서 문득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천재성은 우리를 감탄케 합니다. 그들의 인간적 매력은 우리를 미소 짓게 하지만 창의적 과정의 치열함과 거기서 겪는 현실적 어려움은 화려함 이면에 가려진 고뇌 또한 오롯이 전달합니다. 세상을 조금 더 세밀하게 밀착하여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요. 이 연재가 평소 궁금했던 그들의 이성과 감성을 간접적으로 나마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티스트는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을 창의적인 메시지로 만들어 전달합니다. 즉 일종의 의사소통을 담당하는 언어를 비주얼로 형상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시작과 끝이 정해지지 않은 끝없는 뫼비우스의 띠를 돌고 있는 듯한, 다른 행성에 서 있는 느낌. 네 번째 인터뷰이는 최근 개인전 《사물의 초상》에서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무생물로 무언가 이야기를 끌어내는 그의 작업 세계를 전하고 있는 구본창 작가입니다.

 

 

 

 

The Look of Things


구본창. 사물의, 아니 무생물의 모든 것을 다루는 아티스트다.
 

금관에서 존재의 대사슬을
비누에서 층층의 우주를
백자에서 인생의 처음과 끝을 
탈에서 내면의 무한한 깊이를 담고 있다.

 

“애초에 숨을 쉬지 않는 사물들이지만 어떻게 하면 그것들이 마치 숨을 쉬듯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지 고민하였던 작업들입니다. 오브제의 신호를 파악하는 통찰력을 제가 가지고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 너머, 시간과 경험이 담긴 흔적을 따라가며 그 사물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죠. 짧게 이야기하면 나는 ‘사랑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304km after 2024 Voyage 

 

지난 2023년의 마무리가 서울시립미술관의 《구본창의 항해》 전시였다면, 이번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 전시는 구본창의 사물로 마무리되고 시작됩니다. 마치 특별한 반향처럼 느껴지는데요. 전시 준비 과정은 어땠는지요?


전시를 준비한다는 것은 단순히 작품을 일방적으로 선정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관람객은 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작품이 전시된 공간도 함께 경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품의 크기와 수량을 공간에 맞춰 조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인쇄할지, 조명은 어떻게 할지 등 다양한 요소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ACC 건물은 평면적인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건물은 약 10미터에 달하는 높은 천장, 사방에 있는 통창과 기둥 등으로 구성된 공간이었습니다. 따라서 조명을 활용해 공간의 단점을 최소화하고 높은 천장은 설치적인 방식으로 활용했습니다. 또한 넓은 공간에 충분한 관람 거리를 확보하여 관람객이 각 시리즈별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 구성을 완성했습니다.

 


생물체가 화석이 되는 과정을 화석화라고 합니다. 이번 전시는 이와 같은 ‘화석화’ 과정을 특유의 서사적 성격으로 선보이는 전시라고 들었어요. 작품 수도 무려 200여 점에 달한다고 들었는데 전시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나요?


물이 죽으면 무생물이 되고 간혹 화석화가 되어 우리에게 다시 보이기도 하지요. 이번 전시의 대상물들은 무생물입니다. 애초에 숨을 쉬지 않는 사물들이지만 어떻게 하면 그것들이 마치 숨을 쉬듯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지 고민하였던 작업들입니다. 

 

 

 

 

1부 ‘역사를 품은 사물에 숨결을 입히다’ 중 거대 서사를 내포한 사물의 초상연작이 유독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백자의 영혼이 내려오는 듯한 연출이 가히 장관이었어요. 이 작품에 대한 설명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백자는 2004년부터 진행해 온 작업입니다. 해외에 유출된 백자를 국내에 사진으로라도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로 시작한 작업입니다. 이번에 높은 천장을 본 후, 대형 족자 형태로 프린트하여 걸개처럼 늘어뜨리고 조명을 한다면 하늘에 떠도는 투명한 영혼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이렇게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선보인 14개의 이미지는 실제 해외 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19세기 말에 고향을 떠난 도자기들입니다.

 

 


 

 

2부는 상대적으로 사적인 영역 같아요. ‘일상 속 사소한 사물을 발견하다’라는 주제로 사진가의 시선이 닿았던 곳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듯합니다. 일상의 익숙한 사물부터 생소한 사물까지 다양한 사물이 전시되는데 2부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1부에서 역사를 품은 사물을 다루었다면 2부에서는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소한 물건들의 가치를 다시 바라보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면 쓰다 남은 비누 조각 그리고 물건을 보관하였던 빈 상자 등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것들에서 부재와 존재의 의미를 찾아내려 하였습니다.

 


작가님이 오랜 세월 쌓아온 심미적 정체성이 드러나는 전시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특히 사물을 재해석하는 회고적인 방식이 아닌 시대의 흐름에 반응한 면모가 돋보이는 듯해요. 이번 전시 관람에 포인트가 될 만한 부분을 짚어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 전시에서는 스트레이트한 DMZ 시리즈도 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입구에서 대형화면으로 보여줌으로써 액자 속에 들어 있을 때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크기로 감동을 주려 하였고 끊임없는 전쟁의 공포와 잔인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었습니다. 또한 전통의 인화 기법만이 아니고 공간에 맞추어 다양한 기법과 형태로 보여주려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황금 시리즈는 대형 라이트 박스로 제작한 후 마치 발굴 현장에서 드러난 것처럼 바닥에 눕혀서 전시하였습니다. 그리고 향기로 작업하는 한서형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서 비누 작품 앞에서 관객이 후각으로도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보았습니다.

 

 


 

 

네이트 실버의 저서 『신호와 소음』에 이런 내용이 등장합니다. ‘신호는 진리다. 소음은 우리가 진리에 다가서지 못하게끔 우리의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 그러나 진리는 절대적 진리가 아닌 상대적 적합성에 따른 진리일 뿐, 우리에게 펼쳐진 수많은 정보는 각각 저마다 의미 있는 데이터의 파편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작가님의 작품세계에 등장하는 사물의 존재 방식과 이에 얽힌 기억을 담아내는 것 또한 이 둘 사이의 차이를 인지하는 통찰력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여겨지는데요. 오브제들의 신호를 파악하는 절대적 통찰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오브제의 신호를 파악하는 통찰력을 제가 가지고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 너머, 시간과 경험이 담긴 흔적을 따라가며 그 사물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죠. 짧게 이야기하면 저는 ‘사랑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3부 ‘구본창의 시선과 마주하다’는 방대한 수집품을 포함한 아카이브가 전시가 펼쳐집니다. 1, 2부와는 다른 색을 더하는 느낌이 드는데요. 《구본창의 항해》 전시의 연장선 느낌과 다른 서사의 한 부분인 느낌도 받았는데요. 


서울시립미술관 《항해》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일대기적으로 보여주는 전시였습니다. 이번 《사물의 초상》에서는 시립미술관의 전시와는 다른 면을 보여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많은 주제 중에 과연 어떤 주제에 주로 관심을 가져왔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찾은 제목이 ‘사물의 초상’입니다.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무생물로 무언가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은 평생 제가 추구하였던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고 그 과정을 관객들과 교감하려고 하였습니다. 3부에서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물들의 실체, 언젠가 촬영되기를 기대하는 사물들 그리고 제가 평소에 관심 있는 질감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구본창의 정물은 성숙하고 신비로운 시간을 함의하고 있는 듯합니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최대한 잘 드러나게 하는 단순함의 미학과 작가의 시선으로 해독된 본연의 아름다움이 작품에 표현되는 것 같아요. 세월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예찬이랄까요. 정물에 대해 갖고 있는 작가님만의 철학이 있을까요?


정적인 사물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정적인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적인 배경에서 촬영하려는 대상은 본연의 매력을 제게 가장 잘 보여준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매력을 통해서 저는 대상의 본질 그리고 가치에 더욱 다가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조용한 것의 깊이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잔잔한 물이 깊게 흐른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근래 작가로서 영역을 넓히며 다양한 협업과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시잖아요. 이렇듯 끊임없이 불타오르는 작가님의 예술 열정은 수많은 예술가를 비롯하여 예술계 전반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향후 어떤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제 자신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에너지까지 소진하고 갈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어떠한 작가로 기억되는지는 저의 의도와 상관없이 미래에 평론가나 타인에 의해 기억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포스터에 붉은 색연필 자국이 찍힌 빨간 컵 작품이 상당히 인상적이에요.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소재이지만 가만히 보다 보면 처절한 아름다움을 내포한 듯 보여요. 혹시 이 오브제에 얽힌 서사가 있을까요?


빨간 컵은 일본 카페에서 수집한 것입니다. 2018년도에 긴자에 있는 백화점의 한 카페에서 구한 것입니다. 커피를 마신 후 나올 때 우연히 계산대 옆에 놓여있는, 빨간 펜의 흔적이 많이 찍혀 있는 컵을 발견했습니다. 알고 보니 점원이 커피를 주문받을 때 빨간 색연필로 메모를 한 후 컵에 그 색연필을 던져 넣은 흔적이었습니다. 단순한 색연필의 흔적이지만 마치 저한테는 오래된 상흔처럼 보였습니다. 카페 주인에게 부탁해서 그 컵을 가져와 보관하였다가 촬영한 것입니다. 이번 광주에서 전시를 하면서 광주의 아픔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포스터로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 ACC FOCUS 〈구본창: 사물의 초상〉
-장소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 문화창조원 복함전시 3관, 4관(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38)
-기간 : 2024.11. 22.(금) ~ 2025.3.30.(일)
-관람 시간 : (화-일)10:00 ~ 18:00 (수, 토)10:00 ~ 20:00 * 매주 월요일 휴관
-작가와의 대화 : 02.08 토요일 오후 2시 문화정보원 극장3(3월 특강 신청은 추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sianculturecenter) 혹은 구본창 작가 (@koobohnchang) 인스타그램에 공지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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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Editor / Curator -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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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인터뷰 #사진작가 #구본창 #전시 #사물의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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