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GHLIGHT
-투박함 속의 세심함이 느껴지는 카페
-이름부터 아름다운 마을의 입구, 귤창고
종종 새로운 지명을 접하면 그 지명의 유래를 알아보곤 합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항상 접하던 지명이어도 유래를 살펴보면 전래동화 속에만 있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튀어나와서 어쩐지 새로운 시선과 애착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알아 둔 지명의 지역을 누군가와 지날 때면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는 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제주의 지명은 평소에 글이나 말로 옮기지 않는 형태의 음절이 섞이는 경우가 많아 어쩐지 더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그동안 몰랐던 섬의 역사를 접하는 경우가 있어 사소한 궁금증을 갖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행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월(月/달 월)’이란 단어가 들어간 지명들에 애착을 느끼곤 합니다. 어떤 사연이 있기에 달이란 뜻이 들어갔는지가 궁금하기도 하고, 서늘한 역사를 가진 제주인지라 ‘달’에서 느껴지는 이미지가 그 지역에는 단어와 함께 온전히 스며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애착을 가지는 지명 하나를 꼽아보자면, ‘명월(明月)’이라는 지명입니다. ‘밝을 명(明)’과 ‘달 월(月)’을 합쳐 ‘밝은 달’이란 뜻을 담고 있는 장소라니 발음을 입 안에서 굴려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선비들이 달을 보며 술을 마시며 풍류를 즐기는 ‘명월대’가 있던 곳이라 하여 ‘명월리’로 이름이 지어진 이 서쪽의 작은 마을은 옛 제주의 모습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개발과 보존의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항상 벌어지고 있는 제주인지라 옛 정취의 고즈넉함을 지키고 있는 마을을 만난다는 것은 꽤 반가운 일입니다.

중산간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달리다가 우거진 나무와 마른 건천 옆으로 난 아름다운 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오다 보면 귤 창고를 개조한 카페 ‘하드보일드(Hardboiled Coffee Bar)’가 보입니다. 귤 창고는 제주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건축물인 데다가 외관을 크게 변경하지 않고, 작은 간판이 전부인 카페인지라 지나칠 뻔하다가 만나기로 했던 지인의 노란 차를 보고 황급히 멈춰 주차장에 차를 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