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라는 매체의 구조를 탐구하면서
책의 구성 요소인 텍스트, 이미지, 페이지 등 각 재료의 관계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신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신해옥’, ‘신동혁’입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책’이라는 매체의 구조를 탐구하면서 책의 구성 요소인 텍스트, 이미지, 페이지 등 각 재료의 관계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을 포함한 다양한 기관, 그리고 여러 분야에 걸친 작가들과 협업하고 있습니다. 콘텐츠가 이미 짜여 있는 상태로 디자인을 의뢰받기도 하지만,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 참여하여 책의 구조나 형태를 함께 기획하기도 합니다. 저희는 특히 이 과정에서 작업 주제에 관한 밀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대화 속에서 발견되고 다양한 소재와 작품에서 포착되는 여러 단서를 바탕으로 책을 함께 구성해 나가는 일이 저희에겐 아주 유의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출처 : 초타원형 / 사진 : 박성수
출처 : 초타원형 / 사진 : 박성수
출처 : 초타원형 / 사진 : 박성수
2. 작업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
최근 작업한 박성수 사진가의 첫 사진집이 기억에 남습니다. 작가는 ‘명백해 보이던 장면이 낯설어 보일 때, 혹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정확하게 보일 때’ 촬영한 이 이미지 모음을 ‘정보 값이 없는 사진’이라고 자조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편집 과정에서도 마치 깨진 조각들을 이어 붙이기라도 하듯 끊임없는 수정을 거듭하였습니다. 이미지 배치부터 사소한 선택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서 말이죠. 그렇게 제작된 최종본에서조차 이 수정의 결과가 끝이 아님을 암시하기 위해 사진집은 모두 낱장으로 분리되게끔 디자인하였습니다. 보통의 책이 하나의 완결 작품으로 각 페이지에 콘텐츠를 담아낸다면, 이 책은 ‘인쇄의 표면과 구조 실험’을 위한 재료로 그 자체가 콘텐츠가 되는 것입니다. 이 작업은 기존에 해 오던 작업과 조금 다른 지점이 있었기에 더욱 흥미로웠고, 저희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제공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3. 서재에 있는 책 중 BEST 4를 고르자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솔 르윗(Sol Lewitt), 『The Location of Lines』
이 책은 일반적으로 제본된 책을 펼쳤을 때 왼쪽 페이지와 오른쪽 페이지가 마주 보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과 함께 책에 담긴 서사는 페이지의 순서에 따라 진행된다는 것을 구조적으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책의 펼침면 좌수에는 텍스트가, 우수에는 선이 그려져 있는데, 이들은 마주 보고 있는 서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왼쪽 페이지의 텍스트는 결국 오른쪽 페이지에 그려진 선을 지칭하는 말이고, 오른쪽 페이지의 선은 왼쪽 페이지의 텍스트의 지시에 따라 그려진 것이지요. 나열된 스프레드 자체가 내용의 순차이기 때문에 페이지 번호 없이 진행됩니다. 비교적 단순하게 시작된 첫 페이지의 텍스트와 기호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어렵고 복잡해지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Miriam Cahn: MEINEJUDEN』
이 책은 스위스 태생의 페인터인 ‘미리암 칸(Miriam Cahn)’의 도록으로, 스위스 디자이너 ‘율리아 본(Julia Born)’이 디자인한 것입니다. 그녀의 최근 전시를 기록한 이 도록은 방대한 양의 작업을 책의 형태로 훌륭하게 번역하였습니다. 도록은 14개의 방으로 구분된 실제 전시 공간과 마찬가지로 14개의 챕터로 편집되어 있으며, 각 챕터는 접힌 두 장의 페이지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접힌 페이지의 날개를 열면 독자는 방 안으로 들어가 일련의 일러스트레이션 페이지와 전시 뷰를 감상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책이 열리는 순간 페이지는 공간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Yael Davids: I Am Going to Be Your Last Teacher』
이 출판물은 ‘야엘 데이비스(Yael Davids)’가 2020년 에인트호번과 2021년 취리히에서 개최한 두 가지 전시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기록과 함께 작가가 실제 수업을 위해 제작한 재료를 일종의 콜라주 형식으로 엮어 제작한 워크북입니다. 그녀의 작품, 스코어, 텍스트, 아이디어를 한데 모아 엮은 것으로 책 안에 놓인 텍스트와 이미지는 서로 유기적으로 소통합니다. 이는 책이 부동의 형태로 고정된 콘텐츠가 아닌 능동의 형태로 자유로운 표현을 가미할 수 있다는 점을 해석할 수 있게 합니다.


『WassinkLundgren — Hits』
가로 9cm, 세로 12cm의 이 작은 크기의 책은 네덜란드의 두 사진작가 ‘티즈 그루트 바싱크(Thijs groot Wassink)’와 ‘루벤 룬드그렌(Ruben Lundgren)’의 사진집입니다. 이 책은 두 작가가 2005년부터 온라인에 퍼뜨린 이미지 부스러기를 구글을 통해 추적한 결과를 담은 책입니다. 대개 사진집을 만들 때는 작가의 작품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미지의 복제성 및 재현성 등에 관한 질문 같은 기획을 구현한 책으로, 책이라는 매체가 단순히 이미지를 담는 그릇이 아닌 이미지를 재료 삼아 또 다른 독립적인 완성물로 구현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4. 가장 소중한 사진 책과 그에 얽힌 서사가 있다면요?
『Diane Severin Nguyen: IF REVOLUTION IS A SICKNESS』
이 책은 저희가 2022년에 디자인한 아티스트 ‘다이앤 세버린 응우옌(Diane Severin Nguyen’)의 첫 번째 저서입니다. 뉴욕의 ‘스컬프쳐 센터(Sculpture Center)’와 시카고의 ‘르네상스 소사이어티(The Renaissance Society)’에서 열린 《IF REVOLUTION IS A SICKNESS》 라는 전시회를 기념하여 출간된 책으로 작가의 비디오 작업 스틸컷과 개별 사진 작업이 담겨 있습니다.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공유된 역사가 노래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탐구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응우옌이 공동 작사한 음악이 담긴 플렉시 디스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5. 그중 가장 특별하게 여기는 페이지가 있다면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배경으로 한 작가의 작품이 담긴 페이지입니다. 이 페이지는 고아가 된 베트남 어린이의 성장을 추적하여 냉전적 동맹에 뿌리를 둔 동유럽과 아시아 간의 관계를 집중 조명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바르샤바 광장 동상에 빨간색 리본과 주인공의 목걸이를 함께 올려 둔 장면은 서로 다른 체제 안에서의 교차 지점을 찾아 자신을 명명하는 동시에 청소년 문화가 가진 힘의 혁명을 상징합니다. 이 장면이 담긴 페이지가 이 책의 가장 핵심 페이지입니다. 빨간색 긴 리본으로 된 책의 가름끈과 책등을 반짝이는 긴 목걸이가 각각의 장소를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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