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 다녀본 곳 중 본투스탠드아웃*만큼 진한 레드를 머금은 곳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한남동에 13만 장의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곳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건물 이름마저 '레드한남'입니다.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 : 한남동&경리단길
레드한남은 원래 2층 구조의 나전칠기 공방이었으나 4층으로 증축 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됐습니다. 레드한남이 유명한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하나 구운 13만 장의 붉은 벽돌, 전용복 거장의 옻칠과 나전칠기 작품, 그리고 전통적인 듯 이국적인 듯 그 경계가 모호한 분위기 등 레드한남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짙은 잔상을 남깁니다. 레드한남엔 카페, 아틀리에, 파인 다이닝, 프라이빗 라운지가 입점해 있는데 이 중 카페 '목단가옥'에 들렀습니다.
하늘은 푸르렀고 햇빛이 좋았으며, 붉은 벽돌이 포인트인 건물이라 그 자체를 도보이게 하고자 이날 야외에서는 평소 사용하던 포지티브 모드에서 변화를 줬습니다. GR3는 Luke Taylor의 Candy color 레시피에서 화이트밸런스와 ISO 설정을 바꿨고, 전체적으로 채도와 명암부, 선예도가 높았어요. 그래서 붉은색을 더욱 강조할 수 있었고요. GR3x는 Color Film 레시피에서 ISO 설정을 변경했습니다. GR3와의 차이라 하면 섀도우를 낮췄습니다.



목단가옥 / GR3
한남동 카페거리를 걷다 보면 높은 건물 틈 사이로 더 높은 빨간색 벽돌 건물이 보입니다. 10만 장이 넘는 벽돌을 투입했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붉은 벽돌이 촘촘하게 쌓여 견고한 성을 이룬듯한 모습이에요. 동화였다면 사람들은 강렬한 붉은색 때문에 성 근처를 배회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설정이었겠지만 목단가옥은 오히려 사람을 끌어당깁니다.
건물에 압도되는 기분을 오랜만에 느끼며 외관 곳곳을 뜯어보다 보니 독특한 간판이 시선을 가로챕니다. 간판이 타일로 되어 있어요. 이곳에 대해 사전 정보 없이, 우연히 방문을 했다면 타일 간판을 단지 하나의 포인트로 여기거나 혹은 보지 못한 채 지나칠 텐데요. 대신 아틀리에에서 타일 공예, 자개 공예 등 클래스*가 진행되는 걸 알고 나면 작은 간판마저 타일로 만든 이곳의 디테일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게다가 원래는 일반 간판이었는데 타일 간판으로 교체했다죠.
*네이버 예약, 전화, dm으로 예약이나 문의 가능
이곳은 목단가옥의 입구는 아니지만 전용복 거장이 옻칠한 문을 볼 수 있어요.
계단 아래 샘물목단가옥 입구
목단가옥에 들어가기까지 몇몇 관문(?)이 더 있습니다. 입구로 보이는 듯한 붉은색 타일 계단을 올라가면 전용복 거장이 옻칠을 한 육중한 문이 보여요. 목단가옥 입구는 아니지만 옻칠로 반질반질한 문을 그냥 지나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거장의 옻칠은 거울과도 같다는 것을 깨달으며 계단을 내려갔더니 추운 날씨에도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는 작은 샘물이 보였습니다. 예부터 사람들이 나누어 마시던 샘물이었고 겨울에도 얼지 않은 이 물을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복원했다고 해요.
졸졸졸 소리를 들으며 몇 걸음 걷다 보면 목단가옥의 입구가 나타납니다. 붉은색 벽돌을 닮은 붉은 철문이에요.


목단가옥 내부
자잘한 타일로 채운 화장실 벽
타일로 엮은 모빌
자개로 포인트를 준 벽
등받이가 자수로 된 의자
시그니처 메리골드 애플 티(9,500원)
아이스 아메리카노(6,500원), 티그레(5,000원)
목단가옥의 안과 밖은 마치 지킬앤하이드 같습니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르진 않지만 반전이 존재하거든요. 붉은 벽돌로 세워진 외관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내부도 붉은 벽돌로 되어있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요. 외관 포인트가 붉은 벽돌이라면 실내 포인트는 타일입니다. 공통점이라 하면 안과 밖, 모두 색을 엄청 잘 썼다는 거예요.
실내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소재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각양각색 타일이고, 계단, 바닥, 테이블, 화장실 벽까지 눈 돌리는 모든 곳에 타일이 있습니다. 공간 전체가 점묘법으로 혹은 모자이크 기법으로 완성된 커다란 작품 같아요. 윤현상재 머티리얼 라이브러리에 이어 새삼 타일이 이렇게나 다양하게 존재하는구나 싶고요. 타일을 다루는 곳인 만큼 타일로 제작된 상품들을 판매 중입니다.
또 자개나 자수로 포인트를 줘 전통미를 가미했습니다. 목단가옥은 리노베이션을 거치면서 소품부터 음식까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곳으로 콘셉트를 잡았는데요.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홍콩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야지만 갈 수 있는 어느 작은 카페 같습니다. 그러다 다시 내부를 둘러보면 화려하고도 단아한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그러니깐 이곳은 느끼는 바에 따라 퓨전 사극의 무대가 될 수도, 중경삼림의 무대가 될 수도 있는 곳이에요.
목단가옥에 총 두 번 방문했고, 날마다 다른 음료를 마셨는데요. 메리골드 애플 티는 끝 맛이 달아 흡사 꿀 허브티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었고요. 아메리카노는 산미가 꽤 강한 것을 보니 라테가 맛있지 않을까 싶어요.




외부는 벽돌, 내부는 타일. 작은 네모들이 모여 세워진 견고한 붉은 성은 웅장하면서도 오밀조밀했습니다. 범접하기 어려운 첫인상을 지녔지만 내부는 따뜻한 빛을 사용해 안락함을 주고 타일, 벽돌, 자개와 과감한 색 조합으로 목단가옥만의 고유한 콘셉트를 녹였습니다. 전통적이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요. 안과 밖이 다르듯 내가 느끼는 감정에도 다양하게 변주를 주는 목단가옥은 무척 재미있는 곳입니다.
한남동 카페거리에서 붉게 솟아오른 벽돌집을 찾아보세요. 발견하는 순간 이끌리듯 목단가옥으로 발걸음을 하게 될 겁니다. 참, 입구를 착각하지 마시고요!

목단가옥
· 영업 시간: 화~토 11:00~18:00 (일, 월 휴무)
· 위치: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54길 58-4 지하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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