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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매거진

다방
LIFETravel & Place
나의 다방 일지
카페 아니고 다방 since 1980s [GR로 담은 공간]
202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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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복고 콘셉트가 휘몰아치며 70~90년대를 회상하고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가 쏟아진 적이 있었습니다. 복고는 그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겐 노스탤지어(Nostalgia)를, 그 시절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겐 아네모이아(Anemoia)를 자극하며 지금까지도 다방면에서 영감을 주는 한 현상이에요.

 

'복고' 하면 떠오르는 몇몇 이미지들이 있죠. 옛날 교복, 나팔바지와 청청 패션, 커다랗고 굵은 폰트와 과감한 색 조합, 푹신하고 투박한 패브릭이나 가죽 소파가 있는 다방, 마이마이(워크맨)와 CDP 등등.

 

그중 다방은 별다방, 콩다방처럼 요즘에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 낯선 단어는 아니에요. 여러 가지 사건 때문에 다방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잔재하고 있지만 본래 다방은 차나 커피, 음료를 파는 장소입니다. 1927년, 영화감독 이경손이 우리나라 사람 최초로 종로구 관훈동에 '카카듀'란 이름의 다방을 창업했고 2년 뒤, 심영과 영화배우 김인규가 종로 2가 YMCA 근처에 다방 '멕시코'를 열게 됩니다.* 연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 시절은 혼란했고 혼돈했던 시기입니다.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 다방은 예술가들의 집합소로, 청춘들의 새로운 공간으로, 지역민들의 사랑방으로 그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비록 1990년대부터 다방은 쇠락의 길에 접어 들었고 이제는 다방 대신 카페가 더 익숙하지만 다방이 한국 근대사의 한 페이지를 채웠다는 사실은 불후해요.

 

*출처: 국가유산청 '다방, 100년 전 커피 한 잔의 추억을 더듬다'

 

제가 이번에 방문했던 다방은 전부 저보다 나이가 많은 곳들이었습니다. 세대와 국적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했고요. 다방 전성기를 경험하지 않은 우리 세대에겐 단지 잘 꾸며진 복고풍 공간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곳들은 복고 콘셉트도, 복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곳도 아닌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의 노력 하에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역사였습니다.

 

 

 

을지다방

 

 

을지다방의 역사는 1985년, 40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방을 비롯한 노포의 존재가 점점 희미해지는 순간에도 을지다방은 을지로에 내린 뿌리를 지키고 있어요. 몇 년 전, 을지다방이 있던 건물이 서울시 도시재생사업 대상이 되면서 사장님은 옛 가게와 가까운 현재 건물로 이전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시 문을 연 을지다방은 여전히 옛 모습과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을지다방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자 미약하지만 솔솔 풍기는 한약재 냄새가 쌍화차를 마시러 온 저를 환영해요. BTS가 다녀간 곳이라 젊은 세대나 외국인들도 자주 방문해서인지 사장님께선 놀란 기색 없이 자리를 안내해 주십니다. 좁은 계단, 좁은 문 때문에 가게가 클 것이라 생각을 못 했는데 내부가 꽤 널찍해요. 다이얼을 돌려야 하는 전화기, 이가 나간 설탕 단지 뚜껑, 옛날에 사용했던 계산대 등 다방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난 40년의 세월이 발견됩니다. 그 사이에 침투한 BTS 사진이 이색 풍경이기도 해요. 

 

다방에 왔으니 쌍화차를 마셔야겠죠. 을지다방 쌍화차는 잣과 대추가 가득 들어 있었고 향은 으레 한약재 향이라고 하는 냄새가 났습니다. 먼저 스푼으로 간을 보듯 맛을 봤는데 달큼하고 맛이 진했어요. 진한 맛 때문인지 걸쭉하다는 착각이 들었는데 느낌이야 어떻든 맛있습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쌍화탕을 생각하며 쌍화차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저를 달래는 맛이었어요. 사장님께선 노른자를 터뜨려 저어 마시라고 하셨는데 아직 저에게 난도가 높네요. 쌍화차가 좋았던 또 다른 점은 잣과 대추가 엄청 고소하다는 것. 처음 마시는 쌍화차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을지다방
· 영업 시간: 월~토 06:00~21:00, 일 09:00~20:00
· 위치: 서울시 중구 을지로 124-1, 2층

· 라면 주문 가능(오전 11시 이전까지)

 

 

 

세운나다방

 

 

세운나다방은 세운상가의 터줏대감입니다. 세운상가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있던 곳이거든요. 현재 사장님은 1대 사장님이었던 고모에게 다방을 이어 받아 운영 중입니다. 당시 리뉴얼이나 업종 변경 등의 제안을 받았지만 사장님은 다방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신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낙후된 부분만 재정비했고, 세운나다방은 1984년 그때와 거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운나다방은 대림상가 남-1문으로 들어가 출입문 오른편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내리면 바로 보입니다.

 

내부는 아담한데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는 거울이 공간을 넓게 보이도록 만들어서 답답하지 않습니다. 세월을 탄 소파, 오래된 찻잔과 컵 등 곳곳에서 40여 년의 흔적이 보이지만 보존이 잘 되어 있어 1대 사장님과 현재 사장님이 이곳에 쏟아부은 애정이 느껴져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세운나다방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여기에서 오는 고유함이 정말 멋진 곳입니다.

 

세운나다방의 쌍화차는 을지다방 쌍화차보다는 단맛이 적고 끝 맛이 깔끔합니다. 얼기설기 모여 있는 잣, 잘게 다진 호두, 호박씨, 대추 가운데에 뜬 달걀노른자는 터뜨리기 아까울 정도로 유난히 매끄러웠습니다. 사장님께서는 노른자를 한입 먹은 뒤 차와 섞어 마시라고 하셨지만 을지다방에서도, 여기에서도 차에 풀어먹는 건 실패.(노른자를 터뜨려 차에 풀어보기는 했어요.) 아직 쌍화차 노른자의 고소함을 느끼기엔 혀의 연륜이 모자라요.

 

12시가 지나자 문에 달린 종이 딸랑, 딸랑 몇 번을 움직이고 조용해지길 반복합니다. 금세 다방 안은 대화 소리로 복작거려요. 세운나다방 바깥 출입문 옆에는 대기 명단이 있는데요. 명단에 이름이 가득 차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세운나다방
· 영업 시간: 월~금 11:00~19:00, 토 12:00~19:00 (매주 일 휴무)
· 위치: 서울시 중구 을지로 157 대림상가 4층

 

 

 

터방내

 

 

'중대 다방'이라고 하면 모두가 안다는 곳. 1983년 이래로 수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앙대 학생들의 아지트로 자리하고 있는 터방내입니다. 터방내 역시 보수 작업 외에는 리모델링을 하지 않아 오픈 당시 모습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죽이 벗겨진 소파, 옛날 초등학교 교실 바닥이 단번에 떠오를 만큼 익숙한 벽에 덧대어진 짙은 갈색의 나무 자재, 색이 바랜 갓등, 옛 공중전화, 붉은 벽돌 등 변하지 않은 것들을 볼 수 있어요.

 

계단 하나 내려갔을 뿐인데 시공간이 바뀌고 지내본 적 없는 1980년대에 뚝 떨어진 기분이 들 만큼 분위기가 이색적입니다. 스피크이지 바로 향하는 기분도 들고요. 내부는 9팀 정도 수용 가능할 정도로 작고 또 어둡습니다. 인기가 좋은 곳이라 타이밍을 놓친다면 만석으로 발길을 돌려야 할 수도 있을 듯했어요. 4인용 테이블만 있어 혼자서 카페에 갈 경우엔 이용 시간이 1시간으로 제한됩니다.

 

터방내에선 카페 로얄을 마셨습니다. 티스푼 위에 올린 각설탕에 위스키를 붓고 불을 붙이면 각설탕이 푸른 불꽃 속에서 녹아내리고, 녹은 설탕이 커피 속으로 퐁당 빠져 달콤 쌉싸름한 커피가 완성됩니다. 커피 맛은 상당히 옅고 단맛이 마지막에 희미하게 뒤따라와요. 진한 커피를 좋아한다면 시그니처인 사이펀 커피나 다른 커피를 추천. 옛날 맛을 그대로 간직한 파르페도 추천하고요.

 

중대 다방이라는 별칭답게 공강 시간에 들른 중대생들, 터방내와 같이 나이를 먹은 어른들이 한데 섞여 터방내를 완성합니다. 중대생도, 터방내와 같이 자란 세대도 아니지만 이런 오래가게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있다는 건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위안이지 않을지 생각해 봅니다.

 

터방내
· 영업 시간: 월~토 11:00~24:00 (매주 일 휴무)
· 위치: 서울시 동작구 흑석로 101-7

 

 

 

브라질다방

 

 

‘청량리 카페’ 하면 대부분 스타벅스 경동1960점을 떠올릴 테지만 중장년층의 카페는 따로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1시가 넘자 어르신들이 차 한잔하러 들어오느라 문에 달린 종소리가 연신 울렸는데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다방이 사랑방 역할을 했다는 게 무슨 의미였는지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이 퍽 익숙한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브라질다방이 수 십 년 동안 청량리의 사랑방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운나다방이 우리가 최근 봐왔던 레트로, 뉴트로와 가장 비슷한 분위기가 나는 곳이라면 브리잘다방은 '옛 다방'의 정석인 느낌입니다. 영화 세트장에 들어온 기분이기도 하고요. 호랑이가 그려진 액자, 분재 나무, 물이 졸졸 흐르는 분수 등 심상치 않은 인테리어와 소품에서 투박함이 느껴지고 앞서 방문했던 을지다방, 세운나다방, 터방내와는 확연히 상반되는 분위기예요. 내부가 널찍하고 그만큼 좌석도 많습니다.

 

쌍화차에 들어가는 재료가 다른 다방에 비해 많았어요. 해바라기씨, 호두, 대추는 동일했으나 여기에 검은깨, 깨, 아몬드, 땅콩, 마지막으로 계핏가루까지 뿌려져 있습니다. 생각보다 검은깨 맛과 향이 강했으며 단맛은 적고 쌍화차 자체가 연해서 많이 쓰지 않은 한약을 먹는 듯했어요.

 

다른 세 곳과 다르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르신들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투박한 옛 다방의 정취를 느끼기엔 딱입니다.


브라질다방
· 영업 시간: 매일 09:00~21:00 (명절 당일 휴무)
· 위치: 서울시 동대문구 왕산로 183, 4층
(지도엔 2층이라고 나와있으나 건물 4층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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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M 글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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