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충청도 여행지 편을 기획하고, 촬영지에 다녀오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우리나라에 있는 좋은 곳을 모른 채로 지나치려 했다니 두고두고 아쉬울 뻔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충청도 여행지 마지막 편을 장식할 충청북도 보은에 있는 이 두 곳은 직접 눈으로 봤을 때 그 아름다움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한 곳은 소박하면서도 웅장함이, 다른 한 곳은 화려하면서도 장엄함이 공존합니다. 이미 만추(晩秋)에 접어든지 오래지만 아직 저물지 않은 억새와 단풍에 속절없이 경외심을 갖게 되는 곳.
보은의 늦은 가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행지, 삼년산성과 말티재입니다.
삼년산성
차량 진입 금지를 알리는 표지판부터 산성까지는 걸어서 약 10여 분. 경사가 높진 않지만 그래도 오르막이라고 숨이 조금 차오를 때쯤 오정산 자락에 위치한 삼년산성이 웅장한 기운과 함께 모습을 드러냅니다.
신라시대 난공불락의 요새. 손바닥 길이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화강암을 깎아 쌓아 올린 산성은 거대하고 압도적입니다. 둘레 약 1.7km의 성곽 안쪽으론 나무와 꽃이, 억새가 평화롭게 터전을 내렸습니다. 언제 거센 풍파를 겪었냐는 듯 산성 주변은 고요하기만 하고 들리는 소리라고는 바람에 온몸을 맡긴 채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뿐입니다. 아, 말도 못 할 광경에 그저 감탄사만 내뱉는 저희의 목소리도 있었고요.
산성 위쪽으로 뻗은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를 때마다 나무 계단과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쉬고 있던 메뚜기도 같이 뛰어오릅니다. 떨어진 나뭇잎에 안착하는 메뚜기 착지 소리, 바람과 나뭇잎의 호흡 소리와 함께 산성을 오르면 두터운 성벽 너머로 보은군과 성곽 아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이 광경이 장관이에요. 성곽이 소음마저 차단해버린 듯 주변이 조용하기 때문에 오로지 눈앞 풍경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삼년산성을 에워싼 다양한 수목이 서로 다른 색상으로 울긋불긋 물들어 있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억새가 꼭 이곳의 주인 같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억새밭이 더 넓게 펼쳐져 있을뿐더러 산성에서 눈을 돌리면 바로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이 억새밭이에요. 화려한 색은 없지만 무리 지어 솟아있는 억새는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웠습니다. 조용한 삼년산성에 딱 어울리는 주인이었어요.
현재 삼년산성에선 공원화 사업이 추진 중입니다. 사업이 완료될 시점에 이곳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요? 완공 전, 억새의 소박함과 산성의 웅장함을 느끼고 싶다면 지금 당장 보은으로 달려가세요. 단언컨대 사진보다 직접 눈으로 보는 풍경이 훨씬 아름답습니다.
삼년산성
· 위치: 충북 보은군 보은읍 성주1길 104
· 차량 진입 금지 팻말 근처 도로에 주차
· 입장료 없음
*서문지 방향은 공사 중으로 폐쇄
말티재
가을 단풍 스폿으로 빠지지 않는 곳답게 말티재 전망대는 절정을 찍고 내려오는 단풍을 놓칠 새라 한걸음에 달려온 이들로 가득했습니다. 저희 역시 그 '한걸음에 달려온 이들'입니다. 삼년산성에서 말티재까지 차로 20분가량 소요돼 삼년산성↔말티재를 오가는 코스로 여행 일정을 짜면 좋아요.
전망대에서 본 열두 굽이 말티고개는 거대한 구렁이의 몸통 같기도 하고 기다란 밀가루 반죽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모양새 같기도 합니다. 이 구불구불한 S자 도로는 운전 깨나 한다는 드라이버들도 주춤하게 만드는 S급 난이도 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느린 속도 덕에 창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돼요. 덕분에 운전자, 동승자, 전망대에 오른 이들까지 말티재를 찾은 모든 사람들은 느릿하게, 빠짐없이 이곳을 훑어볼 수 있습니다.
혹여나 단풍을 놓친 것은 아닐까 마음 졸이며 왔는데 춥지 않은 날씨 영향인지 아직까지 화려한 색을 놓지 않았지만 당장 내일이 되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는 자연만이 알고 있겠죠.
말티재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지만 공간이 작아 '말티재 무료 주차장' 표시를 따라가 주차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무료 주차장에서 말티재 전망대로 이어지는 나무 덱이 있어 편히 오고 갈 수 있어요. 위치 특성상 차량 방문 고객이 많은 것을 고려한 덕인지 주차장이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말티재 전망대를 가기 위해서는 백두대간 속리산 속리산 관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요. 관문 안에는 속리산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는 꼬부랑길 카페가 있고 통로에선 전시도 작게 열리고 있었어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겐 단풍과 속리산이 가장 큰 목적이지만 이런 소소한 재미도 말티재를 한 번, 두 번, 여러 번 찾게 되는 이유입니다.
한 번에 출입 가능한 전망대 관람 인원은 70명이고, 입구에서 카운트된 숫자로 입장 가능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말티고개 열두 굽이 길은 전망대 끝으로 가야 제대로 볼 수 있어요. 이 지점이 바로 포토 스폿인지라 사람들이 몰려 대기가 조금 있는 편이에요.
전망대 끝에 서자 말로만 들었던 풍경이 말도 안 되는 모습으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서행하는 차 안에서 파노라마처럼 봤던 똑같은 풍경인데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은 새로워요. 날이 좋을 땐 몽골인의 시력을 가진 것처럼 첩첩산중 너머까지 시야가 트이고, 열두 굽이 길을 달려 전망대에 오른 보람이 발끝에서 차올라 머리끝에서 찌르르 울립니다.
멋진 풍경을 담기 위해 두 가지 렌즈를 들고 갔는데 말티재는 광각, 표준 렌즈 모두 촬영하기에 좋았습니다. 추가로 드론을 띄워 더 넓은 전경을 담고 싶었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 하늘에서 말티고개를 내려다보진 못했어요. 하지만 이곳 역시 삼년산성처럼 눈으로 직접 보는 풍경이 더 아름다웠기에 아쉬움이 크게 남진 않았습니다. 휴대폰으로, 카메라로 사진을 다 찍었다면 눈으로도 이곳을 충분히 담아 가시길 바라요.
말티재 전망대
· 위치: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로 477
· 이용 시간: 매일 09:00~18:00
-우천 및 강풍 등 기상 악화 시 출입 제한
-비가 그친 후에도 전망대 노면이 다 마를 때까지 출입 제한
·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 주차장 / 말티재 주차장 무료 이용
· 입장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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